키신저
이 글은 9-11 테러와 관련하여, 키신저와 그의 그룹이 받고 있는 혐의 (嫌疑)에 관해 뉴욕 교포 사회의 기독교 시사주간지 ‘기독저널’에 게재 (2003년 5월)했던 것을 여기 전재(轉載)하여 싣는다. 한국의 노무현 정권 이 키신저 그룹에 유착(癒着)된 매판(買辦) 정치 그룹에 의해 농간(弄奸) 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이 글이 다소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은 식자(識者)들조차 키신저 그룹이 지닌 심각한 문제성을 의식하기는커녕,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그들은 세계정복과 지배에 대한 야욕을 인해 동북아(東北亞), 그 중에도 한반도 에 대해서는 몇 가지 그들 나름의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한민족 학살정 책(Holocaust)>을 서슴없이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그들 자신의 오염된 의식을 인해, 이 사실을 몰라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DJ와 노무현의 좌파 그룹은 결국 키신저 그룹에 떳떳 하지 못하게 유착(癒着)되어있다. 그래서 한국의 안보 의지(意志)와 기능 을 마비시키는 데에 이름으로써,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 생존에마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글을 내놓기 몹시 민망함을 느끼고 있지만, 아직 이 글에서 보는 시각(視角)으로 오늘의 현실을 읽는 이들이 없다고 보아, 그냥 내놓기로 한 것이다.
2004년 4월 28일
기독 저널 주필 김시환
미국과 인류의 걸림돌, 키신저
- 키신저, 그는 위기의 해결사(解決士)가 아니라, 미국과 인류의 큰 걸림돌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한민족과 그 교회에겐 공연한 침입자 골리앗임이 드러났다. 지금 미국과 한국
은 긴급하게 특단(特斷)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엇들을 하고 있는가? -
꼬리가 밟힌 키신저
드디어 키신저가 그 기인 꼬리가 밟힐 일이 터지고 말았다.
2003 년 초두에 그가 워싱턴 정가에 다시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부시의 덫에 걸린 모습으로 비치기에 족하였다. 워싱턴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을 때의 당당한 목소리에 비해, 사라질 때의 구차한 변명은, 떳떳하지 못하다 못해, 아예 꼬리를 감추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모습이었다. 원래 키신저는 9-11 테러에 관련하여 일련의 불가해한 행동을 해 온 혐의로 눈총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9-11 테러 특별 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委囑)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의심을 받는 위치'로 스스로 이동해 간 꼴이 되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염려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이 조사위원장 직분을 키신저가 당당하다 못해 오만하게 보일 정도의 태도로 수락하자마자, 정부는 그에게 즉각적으로 일상적인 법적인 요청을 했다. 그것은 그의 컨설팅 회사의 고객(顧客) 명단을 밝히라는 요청이었다. 9-11 테러에 관련된 조사 행위는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작업인데, 키신저의 고객 중에 이번 테러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공정한 조사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키신저는 이렇다 할 충분한 설명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고 나왔다. ‘고객의 이익 보호를 위하여' 밝힐 수 없다며,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이 사표 제출 행위의 형식적 의미는, '미국의 안전'보다 '고객의 이익'이 그에겐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 행위의 실질적인 의미는 고객의 이익 보호가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위한 행위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래서 그의 사표 제출 의미는, 그것이 형식적인 의미이든 실질적인 의미이든, 테러 난국에 처한 미국과 세계로 하여금 당혹스런 경악에 빠지도록 하고 있다.
드러난 미국 문제의 핵심
이 사태는 워싱턴 정가(政街)에 심각한 대결 상황이 조성되어 있음을 은연중 나타낸 것이었다. 정치적 '여(與)'와 '야(野)' 사이의 게임이라면, 당연히 함께 워싱턴 안에서 정치 판이 어우러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경우라면, 심각한 대결 상황이란 말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표 소동을 전후로 한 워싱턴 정가 표정은 이런 상황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폭풍이 불고 있었다.
이제 여기에서 그 정치 폭풍을 개략적으로 살핌으로써, 이 사표 소동이 갖는 의미를 해명해 나갈 기초 자료로 삼기로 하자.
부시는 그 취임 초두부터 클린턴 행정부가 미국의 주요 군사 기밀을 해외로 빼돌린 사실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문제 삼고 있었다. 그 당시 키신저는 국방부 정책 자문위원으로서, 그 혐의의 일차적 책임자로 지목되어, 한동안 워싱턴 정가를 떠나 있어야 할 정도였다. 다시 말하자면, 클린턴을 포함하여 키신저 그룹은 부시 정부에 의해 거의 ‘국적(國賊)’으로까지 몰리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이적(利敵) 행위에 대한 혐의를 인해 유태계 무기 회사들은 갑자기 그 수주(受注) 받은 무기 생산을 백인계의 다른 회사들에게 넘겨야만 했다. 이런 정국(政局) 운영의 모양새는 결코 정상적인 민주정치 표상으로서의 여야 대결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정적(政敵)들 간의 패권 다툼’ 수준도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적들 간에 혈전(血戰)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9-11 테러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키신저는 9-11 테러 이후 기묘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판단으로 보아서는 테러범 체포를 서둘러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테러범의 체포보다 ‘테러와의 전쟁’ 쪽으로 미국 정부를 몰아갔다. 당시의 상황은 테러를 사주(使嗾)한 세력이 미국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이 뻔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혐의가 어느 누구보다 바로 키신저 그룹에게 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기묘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최소한 조용히라도 있었어야 한다. 꼭 소리를 높이려면, 테러범 체포를 부르짖든지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테러범의 체포보다 전쟁을 주장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키신저는 9-11 테러를 이용하여 미국을 명분 없는 전쟁의 늪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국 정부가 아무 소리 없이 그 소리에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부시의 입은 이 테러 이후엔 클린턴과 키신저의 이적(利敵) 행위에 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런 기묘한 상황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부시의 그 행동은 결코 테러 난국에 바쁘게 쫓겨서가 아니었다. 9-11 테러는 오히려 다급해진 키신저 측에서 국면 전환을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벌렸다고 보아야 할 사태였다. 그러므로 만일 부시가 정직했다면, 당연히 그 이적행위와 테러 범죄를 국민 앞에 함께 드러내놓고 풀어 나가야 할 사안(事案)이었다. 그리고 그 관련성 여부를 밝혀 가야 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분석을 하고 보면, 부시가 유태 재벌들의 이적 행위에 대해 갑자기 입을 다문 모습이나 테러범 체포를 (잠정적인지는 모르나) 포기한 모습이나, 모두가 정상적인 통치 행위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 쪽으로 키신저의 고압적인 소리에 따라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혹시 백악관이 9-11 테러의 이면에서 무언가 더 무서운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만일 부시가 정말로 몰래 협박당하고 있다면, 부시는 또한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당하기도 할 것이다.
키신저 사표 소동이 의미하는 것
이 사표 소동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그들 간의 대결 상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9-11 테러 이후 부시가 앞서 말한대로의 비정상적인 정국(政局)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키신저 그룹의 힘이 은밀히 백악관을 압박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도 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젠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부시의 백악관 정부가 이 압박에 대해 ‘제한된 저항’을 하고 있음도 확인되고 있다. 동시에 ‘테러와의 전쟁’만은 꼭 키신저의 협박 때문만은 아니고, 부시가 대표하는 백인계 보수주의의 필요에서도 능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 키신저의 사표 소동은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예의(銳意) 분석을 하여 오늘의 테러난국의 해법(解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특히 9-11 테러가 한반도에 지금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이 분석에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
원래 9-11 테러 특별 조사 위원회가 등장하기까지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들이 노골화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백악관도 키신저 그룹도 자신들을 위해 이 사실을 미국 국민들에겐 묵시적인 합의를 본 듯이 숨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위원회가 등장하면서부터는 키신저 그룹은 이런 상황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그 말은 이 기관의 등장과 더불어 9-11 테러에 관련된 자신들의 혐의를 더 이상 숨길 수도 없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 위원회는 9-11 테러의 진범을 체포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여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위원회의 업무는 테러 예방을 제대로 못한 행정부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키신저가 부시를 조사하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말이 된다. 그런 자리에 키신저가 부시의 요청을 받는 형식을 빌어 들어섰으니, 이만 하면, 키신저 그룹이 백악관을 압도할 만큼의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사실을 키신저는 조금도 감추려들지 않았다. 그것이 기자회견을 통해 나타났다.
"어떤 제한이 되었든, 우리는 받지 않게 되어 있으며 또 수용하지도 않을 작정이다.”라고 못 박아 말했다. 그래서 한 기자가 키신저에게 부시 대통령도 그 조사 대상에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모든 사실 관계를 파악할 때까지는 조사 여부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라 고 했다. 이것은 조사하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백히 그의 압력이 백악관을 압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였다. 어느 정도의 압력이었을까? 범죄 혐의자가 국가 통치권자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압력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꼬리를 감추고 도망하다시피 또 사라진 것이다.
키신저의 이런 모습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미국과 세계를 크게 당혹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토록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워싱턴으로 다시 귀환을 하던 사람이 고객 명단을 요구 당하는 바람에 그토록 놀라 달아나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확실히 그의 고객 가운데에 9-11 테러에 관련된 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실을 그 자신이 알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1년이 훨씬 넘도록 그것을 '고의적으로 감추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9-11 테러에 대한 그 고객들의 혐의에 키신저 자신이 관련되지 않았다는 말은 이젠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이 이번 키신저의 위원장직 반납 행동으로써 만천하에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긴 꼬리가 결국 부시에게 밟힌 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시가 빠진 딜레마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부시는 떳떳한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엄연히 미국의 통치권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려고만 한다면 어떤 이라도 볼 수 있을 만큼 훤히 드러난 테러에 관련된 키신저 혐의에 대해 부시는 정상적인 사정(司正)처리를 못하고 있다. 왜 그래야만 할까? 겨우 조사위원회 위원장 자리에서 다시 몰아냈다 하여 그의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당당하게 사정처리를 하지 못한 것은 어쨌든 통치권자다운 모습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통치권자로서의 책임 유기(遺棄)라 해야 마땅한 잘못이다.
하지만 부시가 이런 유기 행위를 그 스스로 원해서 저질렀을 리는 만무하다. 무언가 불가피한 사정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벙어리가 냉가슴 앓듯, 지금 부시는 국민들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있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무엇이 부시를 이런 상황 속에 빠뜨린 것일까?
백악관을 압도하는 키신저의 압력, 바로 이것이 그 부시의 딜레마를 해명하는 열쇠가 되리라 본다. 그리고 압력을 가하며 달려들던 키신저가 고객 명단 요구 앞에 그 기인 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후닥닥 달아나는 우스운 모습을 잘 분석해 보면, 키신저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리라 본다.
백악관을 압도하는 키신저의 압력, 그것은 지금 그가 국방부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어찌 된 셈인지, 그의 신분이 2003년 3월 현재도 엄연히 미국 국방부 정책 자문위원(諮問委員)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전략을 짜는 키맨의 자리에 9-11 테러 이후에도 여전히 키신저가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려면, 단 하나의 경우, 백악관이 키신저의 힘에 눌린 경우 뿐이다.
키신저는 클린턴 행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해 첨단 미국 군사 기밀을 미국 밖으로 빼돌린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9-11 테러라는 엄청난 미국 침략 행위에 잔뜩 혐의가 걸려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정국(政局) 운영이라면, 당연히 부시는 그를 우선 국방부 자문위원직에서 쫓아냈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제껏 그를 붙들고 있어야 했을까? 솔직히 말해, 정말 소름이 끼친다.
거기에다 럼스펠트 국방장관이 전쟁에 집착하고 있는 사실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와 두려운 느낌조차 갖게 된다. 럼스펠트의 전쟁지향 정책에 대한 열정이 키신저와 영합한 것으로 착각이 될 정도로 대단하다. 물론 일단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나 키신저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위해서나 현 단계에서의 부시 정부 전략은 이해해 줄만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테러와 관련된 혐의를 지닌 자들에 대해 사정처리는 아예 손도 못 대고, 그들이 주장하는 테러와의 전쟁 속으로는 늪에 빠지듯 자꾸 깊이 개입하고 있는 현 상황을 누가 정상적인 통치권 행사로 보아 줄 수 있겠는가?
이러고서도 부시 정권이 키신저의 은밀한 협박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만일 그것을 부인한다면, 부시 정권조차 키신저와 한 통속이 되어, 키신저의 인형극 배우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인형극은 미국 국민과 인류를 속여 그들의 ‘지구촌 지배체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목적이라 해야할 것이다. 9-11 테러는 이 연극의 서막이라 해야할 것이고, 두 번의 테러와의 전쟁 역시 이 연극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과연 부시 정부는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부시로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지금은 럼스펠트의 전쟁 정책에 매달려 있긴 하지만, 그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피한 전략에 불과하다. 그가 키신저와 자신을 ‘차별화’시키려는 노력과 의지는 이미 입증이 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결국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1) 9-11 테러는 부시가 키신저를 조사할 사건인데, 왜 그 자리가 엇바뀌어야 했나?
2) 키신저는 왜 부시를 조사하는 자리에 들어서려다 급히 포기하고 도피해야 했나?
3) 부시는 왜 이 순간도 정작 '미국내의 테러 교사범(敎唆犯)'만은 손도 대지 못할까?
이 질문은 테러난국 하에 있는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키신저를 향한
예리한 책임 추궁 세력
물론 부시는 키신저를 그 조사위원장 자리에서 밀어내는 일 정도까지는 해냈다. 이 부시의 행동은 9-11 테러를 통해 백악관을 협박하는 무리들에게 ‘제한적인 저항’을 하고있다는 징조도 된다. 또 부시의 궁극적인 의지는 백악관 협박 세력을 반드시 사정처리를 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긴 한다.
그러나 부시에 대한 국민과 역사의 책임 추궁은 이 정도의 행동으로 멈추어지진 않을 것이다. 특히 그가 지금 대변신(大變身)을 일으켜 갖게 되었다는 그의 기독교 신앙은 이 책임 추궁을 무섭도록 예리하게 그 가슴 속에서 행할 것이다. 위의 질문에 대한 바른 해답을 내놓기 위해 그는 키신저를 비롯한 유태계 재벌 세력 앞에 정면으로 나서서 사정(司正)의 칼날을 휘둘러야만 비로소 그 추궁은 멈출 것이다.
지금 미국과 세계의 안위(安危)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이들 역시 이런 의문을 당연히 지니고 있다. 9-11 테러의 희생양(死傷者 및 遺家族)들 과 기독교도들, 그리고 소위 ‘신(新) 보수주의’로 불려지는 이들을 포함하는 미국의 백인계 보수주의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현재 부시의 정치적 지지세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시에 대한 예리한 책임 추궁 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말을 바꿔 생각해 보면, 부시에 대한 그 책임 추궁은 궁극적으로는 유태계 재벌들에 대한 예리한 적의(敵意)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태계 재벌들은 이젠 테러의 희생양들과 기독교도들에겐 ‘하나님의 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인도주의적(人道主義的)인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겐 ‘양심의 적’이요, 신보수주의자들에겐 ‘미국의 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바로 그렇게 키신저 무리를 보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또 부시 정권이 이들의 이런 자세와 관점을 대리하여 오늘의 미국 정국을 주도(主導)하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2002년 중간선거에서 대승(大勝)을 거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 대승은 이들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시키겠다는 부시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의 선거 캠패인 요지는
“지금 우리 미국 안에는 불신앙으로써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미국의 자유 실현이라 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신앙만이 참된 자유를 실현한다는 것을 믿는 다. 그들은 퇴폐로써 미국 가정과 학교를 부수는 것이 진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 리는 올바른 도덕으로써 가정과 학교를 살리는 것이 참된 진보임을 믿는다. 그들은 미국의 군사 기밀을 바깥으로 빼내는 행위를 미국 힘의 확산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 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군사 기밀 뿐만 아니라, 미국의 미국다운 생존을 위한 모든 가치는 미국 안에 미국인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미국 안팎의 모든 테러 범죄자들과 미국의 약화를 꾀하는 적대 세력에 대해서는 시한부(時限附)가 없는 무제한의 투쟁을 단호하게 전개할 것을 현정부는 천명하는 바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태계 재벌들은 ‘미국을 약화(弱化)시킴으로써 미국을 지배하겠다’는 속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부시 지지(支持) 세력들이 여기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미국을 약화시키려는 이유는 세계를 지배하자는 목적에서이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들이라면, 미국 지배를 그 첫 번째 필수조건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미국 지배의 방향은 반드시 세계를 지배하는 권부(權府)에 미국도 예속(隸屬)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미국은 그 세계지배의 권부보다 약해야 한다. 강하면 세계 지배권 행사에 결정적인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백인계이든 유태계이든 그 외에 누가 되었든, 일단 세계 지배세력이 된 이상은 반드시 이런 짓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유태계 재벌들이 백인계 엘리트들을 따돌리지 않고 세계 지배를 향해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고 나간 동안은 백인계 역시 미국에 대한 자세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그들이 백인계를 따돌리기 시작하자, 백인계는 차츰 ‘미국 강화(强化)정책’에 의해 미국 지지를 얻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래서 미국의 기독교와 보수적인 내쇼널리즘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支持)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대결 상황이 극대화하면서, 오늘에 와선 9-11 테러까지 당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마 그들은 유태계 재벌들과 더불어 같은 하늘 아래 살고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 세력이 이미 자기들조차 전적으로 노예 또는 홀로코스트(人種抹殺)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잔인한 의지를 9-11 테러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원수도 용서하는 사랑으로 대하면 대할수록 그것을 이 용하여서까지 자신들을 더욱 더 노예를 삼으려 하거나, 안되면 말살시키려 들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9-11 테러는 그만큼 심각한 불신과 한(恨)의 골이 패이게 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미국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적의(敵意)를 심어 놓았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마침 일어난 이번 키신저의 사표 소동이 주는 충격은 실로 엄청나게 크다 할 수 있다. 왜냐? 키신저의 이런 이상한 행동을 인해, 테러 난국을 헤어나지 못한 오늘의 미국이 당면한 문제의 핵심이 위에서 지적한대로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답도 지금 이 사표 소동은 모조리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이 사건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자, 그렇다면, 키신저의 워싱턴 재등장과 도피 행각은 그로 인해 드러난 미국 지배력 분열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이 문제의 답을 찾아내려면, 우선 키신저가 지닌 9-11 테러에 대한 혐의를 개략적으로 살핀 후, 그 다음에 이 조사위원회를 만드는 과정에 나타난 부시와 키신저의 행태(行態)를 살필 필요가 있다.
키신저 그룹의
백악관 협박 수위(水位)
9-11 테러를 전후하여 보인 키신저의 모든 행동 동기나 자세, 그것은 실로 미국을 적(敵;enemy)으로 보고, 그에 대해 초법적(超法的)인 힘의 행사를 하는 데에 치중해 있었다. 그것을 암시하는 조그마한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특별 조사위원회 위원장 자리 소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그들의 물밑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미 9-11 테러에서 보듯, 직접적 폭력 행사를 포함하는 협박을 동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그리고 9-11 테러 이후의 그 협박 수위는 9-11 테러보다 훨씬 강도(强度) 높은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아야 할 증후가 있다. 부시로 하여금 테러범 체포와 그 사정처리를 못하게 만든 힘, 그리고 명분이 모자란 ‘테러와의 전쟁’ 쪽으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게 한 힘, 바로 그것이 그 증후이다. 그 증후로 미루어 보건대, 클린턴 행정부의 이적행위나 미국 국내의 테러 사주(使嗾) 세력에 대해선 아예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의 협박임에 틀림없다. 그런 정도의 협박이라면, 당연히 9-11 테러보다 한층 더 무서운 테러의 협박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한편에는 이런 일을 상상하는 것조차 서툰 선량한 소시민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는 이런 범죄를 ‘엘리트의 특권’인 양 즐기며 범하는 자들도 있다.
이런 엘리트의 권력형 부조리가 드러나는 경우를 당하게 되면, 그 어리수굿한 소시민들은 이 무서운 사태를 직시하고싶지 않아 도피적인 심리가 발동한다. 망할 백성이라면, 이 도피심리에 코를 박고 노예화의 길을 걷게 된다. 망하지 않을 백성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자식들 미래를 고려해서라도, 이런 심리를 떨치고 일어나 그 사태를 용기 있게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는 결국 그에 대한 정의로운 저항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범죄를 즐기며 ‘지배적(支配的)인 엘리트’(The Dominative Minority)로 자부하는 자들은 이런 소시민들을 계속 자기들에 대한 공포감 속에 가두어 두고싶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간교한 우민화(愚民化)의 술책을 부리게 된다. 그리고는 자기들에 대한 올바른 비판을 무리한 추측으로 꾸민 소설이요, 중상 모략이라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소리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엘리트 범죄가 오늘의 미국에서 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일반 소시민들의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과연 그들을 향해 사악한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서슴없이 9-11 테러까지 일으킨 무리들에게 공포감으로 짓눌려, 꼼짝 못하게 될까? 그리고는 이런 키신저 무리에 대한 분석을 무리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하며 외면할까?
그것이 무리한 추측이 아니라는 증거는 이미 뚜렷이 나와 있다.
우선 그것은 키신저가 이 특별 조사위원회 위원장직을 돌연히 긴급하게 사퇴하는 행위를 잘 분석해 보면, 그 사실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말한 바대로, 키신저가 원래 이 조사위원장직을 맡을 때는 부시가 자신의 힘에 밀려 이 기관을 만들어 헌상(獻上)했다고 보았었다. 그는 그래서 이 일을 그토록 당당한 태도로 맡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맡고 보니, 부시가 그 행정 절차상의 요구를 요식(要式)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 키신저 밑의 부위원장직을 맡은 사람에게 예리하게 파고들어, 그로 하여금 ‘고객의 이익 보호를 위해’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이로써 부시는 키신저가 구성한 이번 조사 팀 멤버들이 의심스런 인물들로 채워졌음을 내외에 공개하였다. 결국 부시의 이 행동은 키신저에게도 요식 절차로 넘길 수 없음을 은근히 시사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키신저는 오히려 자신이 부시의 함정에 빠진 것임을 재빨리 인정하게 되었고, 그 역시 “고객의 이익 보호를 위해!”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물러서야만 했던 것이다. 필자의 짐작이긴 하지만, 키신저는 결코 단순한 고객 명단 요구 앞에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부시 측에서 이미 ‘문제의 고객들 명단’을 확보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문제의 고객들이 9-11 테러에 관련된 범죄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렸을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랬다면, 그것은 키신저 자신의 혐의를 파악했다는 의미가 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기에 키신저가 물러났다고 보아야 현재의 모든 사태가 이해될 수 있다. 또 키신저는 그런 정도의 압력이 아니고서는 물러날 리 없는 사람이다.
키신저 그룹의 9-11 테러 혐의
키신저가 누구인가? 미국 내 유태계 재벌 정치 세력의 수장(首長)격이요, 유태계 프리메이슨의 핵심인물이다. 그리고 이 유태계 세력은, 이미 간략히 지적했듯이,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더불어 세계지배대권(世界支配大權)을 놓고 지난 한 세대 동안 격렬하게 다투어 온 세력이다. 그 싸움이 양차 대전 직후엔 한반도와 중동과 월남 또는 베를린 장벽에서 소련까지 끼어 든 3파전(巴戰)으로 일더니, 소련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엔 미국 본토-중동-동북아(한반도)에서 양파전(兩巴戰) 형태를 띄고 그 대권 쟁취(人權爭取)의 종반전에 돌입해 있다.
키신저는 70년대 이후 줄곧 이 모든 세력 다툼의 중심권에서 유태계 재벌들의 전략 사령탑 구실을 해온 인물이다. 미국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그는 유태계 재벌들의 세계지배 세력 확장을 위해 온갖 행동을 다 해왔다. 미국의 월남전 패배, 월맹의 베트남-라오스 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휠드 학살극(虐殺劇), 수 차례의 오일쇼크와 그로 인한 세계적 금융대란이나 무역대란, 세계적인 식량 메이저들을 동원한 인위적인 아프리카 기근과 북한 기근, 소련의 아프칸 침공과 이란-이라크 전쟁, 칠레와 한국에서의 국가 원수 암살과 내란과 혁명, .... 이 모든 국제적인 대 사건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그의 기분 나쁜 그림자나 얼굴이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나타나고 있다.
그가 미국 안에서 벌린 일까지 여기서 말하기엔 지면이 허락하질 않는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9-11 테러와 관련된 그의 행동은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대목이기에 여기에 요약 서술한다. 이런 점들은 테러에 관한 그 특별 조사위원회 책임자 임명에서 반드시 고려했어야 할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1) 그는 9-11 테러 사건이 터지자마자 테러의 범죄자 체포에 대한 상식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테러와의 전쟁’ 쪽으로 미국을 다급하게 몰아 갔다.
2) 그는 그러다 보니, 테러의 주범과 종범을 가리는 일조차 무시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라 ‘테러와의 무한전쟁’쪽으로 부시 행정부 를 밀어 붙였다.
(a) 우방과의 대화에 구애받지 말고
(b) 9-11 테러와의 직접적인 관련 여부를 떠나
(c) 테러의 의사가 있거나 테러 집단을 은익 보호-협조를 하는 집단이라면,
(d) 미국은 즉각적으로 단호하게 응징하러 나서야 한다고 했다.
3)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5960 억 달러의 돈이 ‘유고(有故) 여행사와 관련 금융 사’로부터 빠져나감으로써 테러 교사범(敎唆犯)의 마각이 결정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에 관해 침묵했다. 또 그의 영향하에 있는 언론사나 연구소의 입 은 이 일을 ‘빈 라덴의 재(財)테크’로 몰아 갔다.
4) 월(Wall)가의 백인계 금융 전문지인 배어런(Barron)이 이 사실을 보고, 9-11 테러 를 ‘금융가의 전쟁’으로 몰자, 키신저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유태계 금융 전문 지 월 스트ㅤㄹㅣㅌ 저널(Wall Street Jounal)측에선 즉각적으로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 사이의 은원(恩怨)이 엇갈린 오랜 관계’를 보도했다. 그러면서, 부시 가문을 인한 빈 라덴의 대미(對美) 적대의식이 9-11 테러를 일으킨 것이라는 듯이 해설 하였다.
5) 그는 기이하게도 WTC 안에 있던 유태계 회사들이 사고가 일어나기 한 두 달 전 에 완벽하게 피신할 수 잇었던 수수께끼 같은 현상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설명도 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무한전쟁만을 단호하게 주장하며, 결국 ‘악의 축’의 개념까지 은연중에 형성시켰다. 이것은 명백히 미국을 전쟁의 늪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테러범 수사의 화살을 피하고자 하는 술책이면서도, 백인들 지배력을 위축시키자는 공작이었다.
6) 아프칸 전쟁이 끝난 후 테러범 수사 문제가 기독교에 의해 여론화할 조짐이 일자, 해 묵은 ‘72년의 ’닉슨-빌리 그래함 대화‘ 녹음 테이프를 문제 삼아, 빌리 그래함의 사과를 받아 냄으로써 기독교의 입을 봉쇄하려 했다. 동시에 워터게이트의 빌미 가 되었던 그 녹음 테이프 공개를 통해, “닉슨처럼 되지 않으려거든 테러범 수사 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협박을 부시에게 가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당혹스러울 만큼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키신저 그룹의 뚜렷한 9-11 테러 관련 혐의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조사는커녕 오히려 2003년 현재도 키신저 그룹의 오만한 압력행위가 더욱 가중되고만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현 부시 정권이 클린턴 행정부(키신저 그룹)의 이적(利敵)행위를 문제 삼은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인 듯이 상황이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실례를 들어보자. 가령, 앞에서 언급한 그 녹음 테이프 공개 이후의 사태가 그런 상황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말한 친(親) 키신저 측 언론기관들이 그 테이프의 공개를 통해 테러범 체포에 대한 기독교와 백악관의 관심과 접근을 누르자, 그 직후부터 키신저는 부르제진스키까지 동원하여 북한을 이라크보다 더 위험한 전쟁 대상국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아마 이라크에 대한 반전(反戰) 여론이 확산되는 것에 당혹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김정일이 자신에 대한 키신저 그룹의 토사구팽(兎死狗烹) 작전을 간파하고, 그에 저항하는 사태에 더 놀랐을 것이다. 그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유화책(宥和策)을 택한 것은 키신저와 부시를 차별화 하여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자구책(自救策)을 찾아 나선 행위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를 봉쇄하기 위해 급히 김정일을 벼랑 끝으로 몰아 격렬한 대미(對美) 핵주권을 주장하도록 ‘대북(對北) 전쟁론’을 펼쳤다. 물론 이것 역시 미국 내에선 테러범 수사 여론의 봉쇄 작전 일환으로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키신저 전략은 한국에 반미(反美) 무드가 일게 하고, 주한 미군의 역할에 혼란이 일도록 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한국과 부 시 정부 관계가 소원(疏遠)해지게 되고, 김정일을 전쟁 쪽으로 쉽게 유혹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이를 위해 키신저 그룹은 DJ 후원을 갑자기 중단하고, 역시 벼랑 끝에서 김정 일과 물밑 제휴 또는 격돌을 하도록 유도(誘導)하였다. ‘최규선 게이트’와 ‘MJ-21세기 연합’ 그룹은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남한-미국-북한 사이에 불편한 마찰이 일게 함으로써, 부시 정부로 하여금 한반도 지배는커녕 전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자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 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에선 테러범 수사 분위기를 희석(稀釋)시키고, 미국 국민이 북한을 대상으로 보복 테러의 심리적 투사(投射)를 하게 할 묘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의 대미 비판의식과 대통령 선거는 키신저 측의 모략과 DJ와 김정일의 벼랑 끝 생존전략을 인해 처음부터 왜곡된 방향으로 뒤틀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키신저의 언행에서 특히 의심이 가게 하는 ‘상궤(常軌)를 벗어난’ 행위가 있다. 그는 테러가 벌어진 범행 당시의 범죄 행위나 사고 상황 등에 관해선 철저히 기피(忌避)하고 언급해 본 일이 없다. 그로 인해 키신저 그룹으로부터는 단 한 마디도 ‘미국 내부의 테러 협조자’ 내지 ‘교사범’에 관한 분석이나 진단이 나온 일이 없었다. 이것 역시 범죄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깊이 분석을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점들은 비록 키신저의 혐의를 법적으로 묻기엔 아직 부족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테러를 위한 특별 조사위원회에서 평 위원으로조차 고려할 수 없게 할만한 조건이라고 본다. 하물며 위원장으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부시는 무슨 속사정이 얽혀 있기에 이런 사람에게 그 큰 권한을 주어야만 했을까? 앞으로 이 문제가 국민들이 납득할 수준으로 풀려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 9-11 테러 혐의를 조사 위원회 사표 소동과 관련시켜 잘 이해해 보면, 자연히 키신저는 9-11 테러를 직접적으로 음모하고 사주(使嗾)한 범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이 조사위원회 사태 이후의 키신저 입장은 ‘아직 법적 사정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입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지배권 대쟁탈전
- 백인 우월주의와 유태 프리메이슨 간의 패권투쟁 -
하지만 부시가 정말로 이런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부시 자신으로서는 당분간 국민들을 납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하에서의 미국 시민들 입장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이유에서라도, 그들 스스로 이것을 사실로서 확인하고 이 협박자의 무리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 본다.
그런데 때마침 일어난 키신저의 오만한 등장과 당혹스런 퇴장의 모습은 바로 이것을 서민들로 하여금 확인할 수 있게 할 기막힌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 이제부터 이 조사위원회와 관련해서 벌린 키신저 행동을 다시 분석해 보자.
원래 이 기관의 설립 목적은 테러범의 체포가 아니고, 테러 예방을 못한 행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에 있었다. 그 기능대로라면, 키신저가 부시를 조사할 수는 있는데, 부시는 이런 키신저에 대해 손도 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자리에 부시는 국가 통치권자임에도 불구하고 키신저를 정중히 모셔오는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키신저는 오만한 취임 선언과 더불어 마치 제 물건 제 주머니에 담듯이 즉시 그 자리에 취임했다. 어떤가? 이러한 키신저와 부시의 행동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렇다. 이 기관의 등장은 부시의 ‘정상적인 통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님이 여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이것은 참으로 주목해야 할 사안(事案)이다. 이것은 키신저 그룹이 부시의 통치체제에 가한 압력의 소산(所産)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들 간의 잔인한 힘의 대결 연장선(延長線)상에서 이 조사위원회를 등장시켰다는 의미이다. 무엇을 보고 이런 대결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부시 행정부는 그 출범 직후부터 유태계 재벌들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받아온 클린턴 행정부가 미국의 첨단 기술을 해외로 몰래 빼돌린 행위를 이적(利敵)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이를 인해 미국 보수주의는 유태계 정치세력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가했었다. 그러더니, 9-11 테러가 일어나자, 이것이 유태계에 의한 맹렬한 반격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오늘까지는 미국 바깥으로 그 싸움을 끌고 나가 ‘테러와의 전쟁’ 형태로 일을 치르고 있다. 이 싸움이 미국 안에서 치러지면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는 것을 상호간에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키신저가 부시를 수사할 자리’를 부시가 만들어 키신저를 모셔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들 간의 잔인한 힘의 대결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지금 미국은 부시(前大統領)-체니-그레그- 부시(現大統領)를 중심으로 하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과 키신저-록펠러-브르제진스키-클린턴을 대표로 하는 ‘유태계 세계지배주의 집단’ 사이에 미국 지배권 쟁탈전이 처절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여(與)’와 ‘야(野)’ 사이의 민주적인 정치 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날 미국과 쏘련 사이의 냉전 이상으로 냉혹한 패권(覇權) 쟁탈전을 말한다. 그들의 목표는 간단히 말해서 ‘미국지배를 통한 세계지배’이다. 그들 사이에선 지금 누가 어떻게 그 주도권을 잡느냐가 문제이다. 9-11 테러도 이러한 대결구도(對決構圖)를 전제로 하여 볼 때에만 그 진상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보아야 할 근거가 이 조사 위원회 출현과 키신저가 돌출(突出)시킨 사표소동을 통해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만일 현 부시 행정부가 정상적인 통치권 행사 차원에서 9-11 테러 문제를 다루었다면, 당연히 ‘테러 예방을 못한 원인의 조사’보다 ‘테러범 체포’ 문제를 우선 순위에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정(司正)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었어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선 법무부의 ‘애쉬크로프트(Ashcroft) 장관 체제’가 정치적인 외압(外壓)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이미 드러나 있는 ‘미국 내부의 테러 사주(使嗾) 집단’을 사정 차원에서 정공법(正攻法)으로 다룰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위원회가 테러범 체포 팀보다 먼저 등장하는 모습이나 키신저가 등장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잘 상기해 보라. 부시 정권이 취했어야 할 이런 정당한 통치권 행사와는 거리가 먼 ‘밀실(密室)의 협박과 거래’의 냄새가 물씬 풍겼을 뿐이다. 그런 거래는 없었다고 키신저 그룹이나 백악관 당국자들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9-11 테러에 대해 수많은 의혹을 사고 있는 키신저가 도대체 어떻게 9-11 테러에 관련하여 부시까지 책임 추궁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키신저가 최근에 워싱턴에 대해 무슨 힘의 시위를 벌렸었을까?”
라 고 하는 의문은 이 특별조사위원회의 출범을 날카롭게 주시한 이들 모두가 공통되게 느끼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난 이 시간까지 그런 해명은 어느 쪽에서도 없다. 아니, 하려드는 낌새조차 없다. 그러므로 협박과 밀거래(密去來)의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미국은 백악관의 통치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는 의미이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범죄가 만일 사실이라면, 미국 건국이래 가장 무서운 국가 파괴범이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지금 그런 범죄 증후가 아무리 눈을 가리고 못 본 척 할래야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포감을 드리우며 미국 국민들 앞에 나타난 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미국 국민의 통치권자(統治權者)마저 이미 그 협박에 잠정적으로 혀가 굳어진 상황이어서, 이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국 국민은 현재의 통치권자의 입장은 이미 ‘유고(有故)’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고, 그를 어떻게 도와야 이 국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지 깊이 고려해야 한다.
키신저의
대(對) 백악관 협박 증거
그 동안의 키신저 행태(行態)로 미루어 보아, 그 힘의 시위(示威)는 백악관에 대해서까지 ‘직접적으로 협박’을 하는 수준이었으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코 ‘압력 상황 조성을 통한 간접 협박’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심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구체적인 폭력의 시위가 포함된 협박이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이번 조사위원회에 나서는 키신저 행동 패턴을 살펴보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만한 종래의 냉철한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행동 하나에 이르기까지 오만하고 거칠고 분노에 찬 힘의 과시로 일관하고 있는데, 그것이 모두 부당한 압력 행사의 행동 패턴에 딱 들어맞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이번 조사위원장직을 맡았다가 돌연히 사표를 낸 그의 행동을 살펴보자.
그 자리에 나가게 되면, 반드시 법적인 행정 절차로서 그의 컨설팅 회사 고객 명단을 포함하여 그의 주변을 투명하게 정리하도록 요구받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이런 요구 앞에 투명하지 못한 그가 뚫고 나갈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없다. 있다면, ‘초법적(超法的)인 힘의 행사’ 이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비정상적인 불법 거래라든가, 또는 협박 이외에 달리 길이 없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는 이 초법적인 힘의 행사가 가능하리라 보고 이 일을 맡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키신저는 이 기관을 부시 정부의 정상적인 통치권이 행사되는 자리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어디까지나 미국 지배권 쟁탈을 위한 부시와의 대결에서 자신이 잠시 이겨, 그 전리품(戰利品)으로서 이 조사위원회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행동의 연장선상에서 키신저는 고객 명단의 요구를 간단히 요식(要式) 절차로 넘길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위원장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덥석 문 그의 행위로 보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키신저의 실상은 그 ‘돌연한 사표 소동’이 아니었더라면, 그나마 가려져 보이지 않을 뻔했다. 특히 그 사의(辭意) 표명의 이유를 그는 거침없는 태도로 ‘자신의 고객 이익 보호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것은 키신저가 당혹해서 취한 행동이라기엔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가이다. 그리고 그의 밑에 있던 부위원장이 그보다 먼저 똑같은 일을 당한 상황이었으므로, 이미 당혹스러워 할 단계는 지나 있었다.
따라서 거침없이 간략하게 ‘고객의 이익 보호’를 내세우는 그의 행태는 엄청난 의미의 메시지를 포함시킨 고도의 간접화법(間接話法)이라 해야 올바른 평가라 할 수 있다. 그 사의 표명 언어는 조소를 섞어 우회적으로 내던진 협박성 메시지였다. 그의 그 메시지는 이미 그의 협박 아래에 있는 부시의 집권 그룹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온 백성에게 던진 메시지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부시 정권에게 던진 협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래! 내게 9-11 테러에 관련된 사람들 좀 있다.
내 혐의(嫌疑)를 건드려 이미 간접 공개를 한 셈인데, 어쩌자는 것이냐?
내게 사정활동이라도 펴서, 잡아 넣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9-11 테러는 이 대권 경쟁에서의 나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미국일지라도 그 희생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을,
또 내 손에 핵과 생화학 무기의 스윗치가 들려 있음을,
명백히 보여 준 셈인데, 아직도 내 의지와 힘을 시험하겠다는 것인가?”
미국의 유태계 정치 세력,
이젠 미국 국민들까지 협박
그런데 키신저의 이 행동의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조사위원회 자리를 사양하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그에게는 미국의 국가 안보보다 자신의 고객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셈이다. 미국 시민들의 생명의 안전보다 그의 몇 명 고객의 안전이 그에겐 더 절실한 중요성을 띄고 있다고 선포한 셈이다. 그런데 그 고객이 누구인가? 테러 예방을 못한 행정부내의 원인을 조사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키신저 자신이 밝힌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불이익을 당할 고객이란, 말하자면, 9-11 테러를 통해 미국인들의 생명을 잔인하게 빼앗아 가는 일에 관여한 자들이란 뜻이다. 그런 자들의 그 범죄 행위를 가려주는 일이 미국인들 생명을 지켜주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뻔뻔하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키신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키신저는 그런 자들의 이름을 이미 지난 18 개월 이상을 알면서도, 밝히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런 인물이 이번 조사위원회 활동을 장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이미 밝힌대로 그 초법적(超法的)인 힘의 행사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부시의 고객 명단 요구가 행정적 요식 행위가 아님이 드러나자, 오만하게 분노를 표출하며, 아주 간결한 성명을 발표하고 물러난 것이다.
“나는 나의 고객으로 하여금 불이익을 당하게 할 수 없다!”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거듭 묻게 된다, “도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이냐?”라고.
더구나 그는 이런 말을 백악관의 귀에 대고 한 것이 아니고, 온 천하가 다 알도록 공개적으로 천명(闡明)했다. 이런 행위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그는 테러 사태 이후부터 미국 안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가 테러와의 전쟁을 주장하며 그토록 염려하는척했던 미국 안보는 실상은 미국을 전쟁의 늪 속으로 끌어들이자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특별 조사위원회 위원장직도 공정한 수사를 목표로 맡은 것이 아니고, 부시 정부에 대한 부당한 힘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에서 맡았었다는 의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런 식으로 자꾸 밀리는 백악관의 통치 권위를 아예 땅에 떨어지게 하는 것, 그 대신 백악관을 압박하는 세력의 지배력은 한없이 확대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정적(政敵)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조차 두려워 떨며 그 앞에 엎드리는 사태가 오게 하는 것, 이것이 키신저 무리의 목표라는 것을 이제 와선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서민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미국 군사 정책이 지금 같은 상황하에서도 이런 사람의 영향력에서 못 벗어나고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사태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키신저는 드디어 노골적인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뻔뻔한 공개적인 천명 자체가 대(對)국민 협박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사표 소동 직후에 북한 핵 문제를 새삼 들추어 이라크를 건너 뛰어서라도 공격해야 한다고 부르제진스키까지 동원해 나팔을 분 행위는 미국 시민들을 향한 비웃음 섞인 협박으로 안 볼 수가 없다.
그 미국 시민을 향한 협박성 메시지 내용은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미국 시민들도 이젠 이 키신저의 통치 방식에 순응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9-11 테러를 통해 그가 보내는 메시지가 '테러범 체포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하라!'하고 외치거든, 그대로 하라. 그가 '테러범 체포보다 테러 예방 못한 원인조사를 하라!'고 하면, 역시 그대로 하라. 그가 누구인가? 지난 반세기 동안 핵무기의 압력을 통한 ‘공포의 균형'과 그 '균형의 파괴'를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구사하여, 냉전체제 속에 구(舊) 소련권을 가두어 냉동 붕괴를 시킨 영웅이다. 그로 인해 오늘의 미국은 세계 유일의 절대강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실로 키신저와 그의 그룹은 미국에 대한 최대의 은인이요, 불세출의 영웅이다.
이러한 키신저와 그 그룹은 미국의 세계 지배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미국의 힘(무기)을 전 세계에 재배치하고자 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을 미국을 배신한 이적행위(利敵行爲)로 간주하다니, 말이 되는가? 9-11 테러와 그 후속 조치인 테러와의 전쟁은 이러한 미국을 가르쳐 이 키신저 그룹의 지도력에 순응시키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이 말에 순종하고 안하고는 미국 시민들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시민들 스스로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키신저 그룹은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미국일지라도 희생시켜야 한다면 희생시킬 굳센 각오가 되어 있음을, 이번 테러 난국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었다. 또 그럴 수 있는 힘도 보여준 셈이다.“
이것이 미국 시민을 향한 그의 협박성 메시지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키신저 스타일의 정치 바람이 ‘인류의 평화를 이룰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라며, 거기에 진지한 열정으로 철학적 변증까지 하는 이들이 있다. 가령, 저명한 정치 철학자 딕슨(Peter Dickson)이 쓴 ‘Kissinger and the Meaning of History'라는 책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마 그런 이들은 오늘의 위기를 보고도, 키신저의 위대성이 다시 드러나 미국을 순치(馴致)시켜 가는 과정으로 보고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키신저의 그 간접 화법 위협 내용은 이처럼 키신저에게 최면 당한 사람들의 말이 되어 여기 저기 흘러 다니고 있음도 때때로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이미 병적인 정치 신드롬이라는 것이 입증된 바 있다. 지난 세기후반의 국제정치에선 이 정치 심리적 괴질(怪疾)을 인해 더 이상 정치도덕이니 정치적 윤리이니 하는 것은 그 단어조차 비웃음 받으며 사라져 갔었다. 왜냐하면, 이 증후를 인해 지난 베트남 전쟁 당시부터 국제 정치 무대는 완전히 속임수와 이해타산과 잔인한 힘의 대결장으로 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키신저 아류(亞流)들의 등장과 더불어, 이 더러운 신드롬은 전세계에 걸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병으로 퍼졌다. 그러다 오늘에 와선 드디어 키신저 자신이 ‘테러에 의한 평화의 붕괴를 음모’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키신저와 그의 그룹들이 이처럼 미국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과 음모의 희생이 되도록 하는 행동을 취한 것은 어제나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한 세대 전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 때부터 있던 일이다. 미국 외교의 핵심 인물로 키신저가 등장한 이후, 이런 유태계 재벌들 행태는 즉시 실현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언론의 자유,
그 허(虛)와 실(實)
- 유태계 언론 폭력은 미국의 언론 자유를 파괴하는 주범 -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 사실은 미국 안에 살면서,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잘 알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지금 미국의 몇몇 주요 언론사는 키신저의 이런 행동을 보고서도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그와 아울러 ‘미국내의 테러 주범 체포’에 관해서도 미묘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테러 발생 후 19 개월이 된 오늘 2003년 4월 현재에 이르도록, 마치 미국 전체가 이 문제에 관해 입을 다문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참으로 지나쳐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과연 미국 국민들이 이에 관해 정말로 조용한 것일까?
더욱 이상한 것은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관심이 마치 ‘통제되어 있는 듯이’ 언론 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언론의 전면에 그들이 나선다면, 당연히 테러의 진범 체포를 무엇보다 우선 순위에 놓고 서두르라고 요구할 것이 뻔하다. 그들에겐 ‘희생양(犧牲羊)으로서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 테러 진범 체포를 요구하는 소리, 바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이 유가족들을 기피하는 것일까?
미국내의 테러 주범에 관한 언론의 이 이상한 침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이미 9-11 테러에 관한 언론의 보도 자료만으로도 이제까지 논의해 온 분석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의적인 침묵이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언론은 왜 이 미국 최대 문제에 대해 고의적으로 입을 다물어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해 보아야 한다.
우선 첫 번째로는 그 언론사들의 수수께끼 같은 침묵이 결코 9-11 테러 전반에 대한 침묵이 아니고, ‘선택적인 침묵’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보도할 것과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적으로 가려서 내놓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 선택적인 침묵의 다른 또 한편에선 ‘선택적인 과장 보도’를 일삼는다는 사실이다. 침묵이 혐의의 사실을 가릴 목적이라 한다면, 과장은 사실에 대한 고의적인 왜곡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9-11 테러에 대한 그 몇몇 언론사의 자료 해석과 주장이 언제나 편파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반드시 키신저 그룹의 대변인 같은 역할을 자임(自任)하고 있다.
네 번째로는 어쩌다 그들의 보도 관제(報道管制) 대상이 되는 내용을 어쩔 수없이 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해도, 편집상의 기술을 부려서라도 그 보도 내용의 의미 축소나 이해의 왜곡을 유도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언론계에 의한 언론 폭력을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 사건이 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터진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실로 미국 내부에서 진실한 민주주의를 파괴시킨 일이었고, 동시에 오늘의 유태계와 백인계 사이의 처절한 쟁투의 연원(淵源)이 된다. 9-11 테러 이후의 미국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아 여기 그 사건의 진상을 잠시 분석 해명하기로 한다.
거침없이 자행된
대(對) 미국 심리적 테러
- 30년 전의 ‘닉슨-빌리 그래함 대담’ 녹음 테이프 공개의 의미 -
지난 2002년 3월 초, 미국 백악관과 기독교는 또 다른 하나의 테러를 당한 바 있다. 그것은 미국 자체가 당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다. 9.11 테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심리적 폭력에 의해서이다.
그 때 미국 내 신문들이 갑작스럽고도 요란하게 30년 전의 백악관 내 환담(歡談) 한 가지를 폭로 형태로 공개했다. 그 공개 과정이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문제 삼는 비평가들 어투나 또 이런 사태에 당혹해 하는 대화 당사자의 모습까지 살펴보면, 그 모두가 현 백악관 당국과 기독교의 행동 선택에 심리적 제동(制動)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미국 양심 세력에 대한 언론의 폭력이었다.
왜 그렇게 보아야 하는가? 보수적 기독교야말로 오늘의 미국에서 가장 귀중한 도덕적 보루(堡壘)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악관은 흠이 있는 대로나마 그래도 그 미국 양심의 소리를 통치력으로 치환(置換) 시켜야 할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된 상황을 잘못 보면, 마치 빌리 그래함 개인이 비난당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닉슨의 그 묵은 흠이 어쩌다 끄집어내 져, 새삼 유태계에 대한 그 인종 차별 자세가 비판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 언론이 무슨 할 일이 없다고 지금 와서 새삼 그런 짓을 벌린단 말인가? 실은 거기엔 아주 큰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 9.11 테러의 배후에 관해 보수적 기독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아니면, 빌리 그래함과 같이 당한다.”
“ 9.11 테러의 미국 내 진범에게 백악관은 손을 대려 하지 말라. 아니면, 닉슨처럼 밟힌다.”
바로 이 메시지를 그들은 협박 조로 던졌던 셈이다. 그들로서는 아프칸 종전이 이루어진 당시 상황하에선 다급히 그런 연막 전술을 안 쓸 수 없었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전과 같은 양상대로는 도저히 지속시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젠 미국 사회가 테러의 진범(眞犯)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왜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긴 했다. 하지만 정작 테러 자체의 해명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곧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불만의 불똥은 어디로 튀겠는가? 당연히 9.11 테러와 관련하여 가장 혐의가 짙은 대상을 향해 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유태계 정치 재벌들 속이 숯처럼 타들어 갔다.
왜냐 하면, 이젠 그들의 혐의가 숨겨질 수 없을 만큼 거의 다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불만은 곧장 불같은 분노로 타오를 것이요, 화살 같은 추궁으로 날아 와 박힐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증상은 먼저 유태계 내부에서 나타난 바 있는데, 그 결과 심한 내부 분열로 치닫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유태계 정치 재벌들은 나름대로 무엇이 되었든 어떤 방어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방어 대상에 부시의 백악관이 드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들은 보수적인 기독교도 그 대상에 끼어 넣었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리고 그 방어 조치로서 하필 30년 전의 ‘닉슨- 빌리 그래함 대담’이 이용당해야 했다. 왜 그래야 했나?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
- 미국의 양심인 기독교 보수주의에 대한 유태계 언론의 폭력 -
이를 해명하려면, 우선 그 대담 내용과 배경에 대해 개요만이라도 알아야 한다.
1972년 2월 1일, 백악관 조찬 기도회가 끝난 직후였다. 닉슨 대통령과 빌리 그래함 목사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들며 한 시간 여의 환담을 나누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두 지도자는 미국 내 ‘유태계 언론 폭력’에 대한 우려(憂慮)와 쉽지 않은 그 방지 대책(防止對策)에 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닉슨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유태인들을 혹평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비종교적(非宗敎的)이거나 무신론적(無神論的)이며, 도덕성이 결여된 무리들(bastards)로서, 미국 대중문화의 저질화(低質化) 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족속이다.”고 했다 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 역시 이에 공감을 표시하며 말하기를, “유태인들은 내가 그들의 문화에 우호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은 나도 그들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통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켜 볼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이 두 지도자는 자연히 유태계 언론 기관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의한 폐해(弊害)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말하게 되었다. 미국 언론사의 95%가 유태계에게 넘어 가 있고, 헐리우드와 뉴욕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사실상 거의 유태계 차지인 현황(現況)에서 미국의 대중문화는 도덕적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의 늪 속에 빠진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오늘에 와선 퇴폐와 폭력과 괴기(怪奇)의 극치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청장년과 십대는 물론이고, 이젠 초등학교와 유치부 아이들까지 이 괴기 문화 속에 갇히다시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온 백성들의 의식(意識)은 마싸지 당하고 심리는 최면(催眠)에 빠져, 교회는 자꾸 사람이 줄고 학교는 마약과 폭력과 성범죄가 난무(亂舞)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 두 지도자는 이를 개탄하면서, 서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을 다짐하며, 닉슨 재선(再選)을 그 책임을 이행할 기회로 기대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들이 나눈 대화는 그 시기와 당시의 여러 가지 정치적 모우멘텀으로 보아, 공개되는 즉시 무서운 폭발을 일으킬 화약(火藥)이었다. 왜냐하면 ‘68년 선거 때에 닉슨은 정치적 재기(再起) 자금과 조직 기반을 유태계 정치 세력의 대부(代父)인 록펠러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 있던 닉슨이 유태계를 배신하는 속마음을 하필 빌리 그래함에게 비밀 리에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 소리를 유태계 측에서 엿들었다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인 상황이었다. 또 당시 대통령 집무실조차 국가 안보를 핑계로 도청하고있던 막강한 키신저 파워를 생각하면, 이 소리는 그의 귀에다 대고 한 소리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결과는 뻔했다.
거기에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대표하는 미국 내 기독교 보수주의와 유태계 그룹은 어떤 사이인가? 그 유태계 정치 세력은 미국 내의 기독교 보수주의를 그들의 종교적 정치적 천적(天敵)으로 취급하는 이들이다. 기독교 보수주의 역시 유태계 정치세력을 성경이 예언해 온 ‘적 그리스도(Anti-Christ)' 세력의 한 부분이 아닌가 하고, 날카롭게 주시(注視)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대화는 당연히 유태계로 하여금 단호한 행위를 취하게 하고도 남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를 인해 유태계 측에서 취한 조치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이었다고, 필자는 단정한다.
무슨 근거에서 그런 단정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먼저 그 사건 전개 과정을 보아도, 이런 냄새가 짙게 풍긴다.
미국 정계는 바로 그 대화 무렵부터 ‘72년 선거전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이 선거전의 어느 때부터인가 그 파문의 원인을 제공할 인물이 등장하였다. 물론 그 인물은 문제의 ‘워터게이트’ 현장에 닉슨 측 과잉 선거 운동원으로서,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파견되었었다. 이것은 당시 닉슨 측 변호인단의 강력한 주장이었지만, 꼭 그들의 말이 아니라 해도 당시의 정황을 정직하게 보면, 누구라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결국 그에 의해 닉슨 자신도 께름직해 하며 머뭇거리는 사이에 과잉 선거 공작이 부자연스런 신속성(迅速性)을 띄고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 말에 닉슨 재선이 이루어지자마자, 즉시 ‘워터게이트 파문(波紋)’ 이 일기 시작했다. 그 뒤에 온 결과가 무엇이었던가? 말할 것도 없이, 닉슨 뿐 아니라 전 미국은 수치의 늪 속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기독교는 잠시 되찾기 시작했던 도덕적인 발언권을 억압당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미국 국민은 정치 혐오 증세와 도덕 불감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반대로 유태계 정치의 대부(代父)였던 록펠러는 이 사태를 기회로 삼아 ‘선거를 치르지 않은 대통령’이 되고자 거칠기 짝이 없는 정치 행보를 딛기 시작했다. 그 때 당시는 한창 워터게이트 추문(醜聞)이 온 세계를 풍미(風靡) 하고 있었고, 닉슨은 그로 인해 잔뜩 주눅 들어 있을 때였다. 록펠러는 그의 막강한 언론사를 이용하여 여론 재판으로 애그뉴 부통령의 뇌물 혐의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부통령 자리에서 쫓아냈다. 그런 후 닉슨에게 얼굴을 내밀어 자신을 부통령으로 추대할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것은 닉슨이 사퇴할 경우에 자신이 백악관 주인으로 자연히 승계(承繼)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그러나 닉슨은 물러나면서도 이 록펠러의 요구를 거절하고, 중립적인 포드를 지명했다. 할 수 없이 그는 한 발 물러나, 포드로 하여금 자신을 부통령으로 지명하게 했다. 닉슨 행정부 안에서 이런 록펠러의 행보가 가능하도록 연출 역할을 맡은 인물이 바로 헨리 키신저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처럼 숨막히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계산된 음모의 산물(産物)이었다. 겉으로 보면, 닉슨의 비겁한 음모 정치(陰謀政治)를 정의감이 강한 우드워드(Bob Woodward)라는 기자(記者)가 나서서 고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단계만 깊이 정직한 마음으로 살펴보면, 결코 권력층의 부패 척결(腐敗剔抉)을 위한 순수한 정의의 고발 행위가 아니었다.
그 고발에 참여한 기자 자신은 혹시 진실할 수도 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입장에 있는 그에게 닉슨 측의 그 ‘과잉 충성을 바친 선거 운동원’이 워터게이트 공작(工作) 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면, 자신의 글이 어떻게 이용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기사 작성을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기자 개인은 칭찬해 줄만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는 결국 정치적 음모에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한 ‘삐에로 영웅’에 불과하다.
워터게이트의 역(逆) 음모자들,
9-11 테러의 교사범.
이제라도 이 사건의 진상을 바르게 알려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저지른 자들의 미국에 대한 범죄의 실상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이 사건 전체가 닉슨 그 사람보다 훨씬 사악한 자들의 음모와 공작에 휘말려 온 세상이 한바탕 떠들썩한 광무(狂舞)로 난잡한 추태를 벌렸었다는 것을 이제라도 정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이것을 이제라도 진지하게 시인하고 당시의 음모 집단을 밝혀야 할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집단이 바로 오늘 그 해 묵은 백악관 대담(對談)을 끄집어 내, 새로이 기독교의 도덕적 보수주의를 공격하고자 획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의 이런 행동 동기가 9.11 테러에 대한 자신들의 혐의를 가리기 위한 행태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 행위는 또한 미국 사회를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영구히 빼내어, 자신들의 ‘힘의 철학(Social Darwinism)'에 종속(從屬)시키려는 음모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렇게 함으로써 궁극에 가서는 미국과 세계를 자신들의 영구적인 지배체제 하에 노예로 묶어 두려는 야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집단이 9.11 테러와 정말 깊은 상관 관계가 있다면, 그들은 아프칸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틀에 짜 맞춘 듯이 실천하게 되어 있다.
우선 자신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 집단을 지목하여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테러에 관련된 그들의 범죄를 법적으로 다스릴 해당 기관의 기능 마비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들 것이다. 또 그 공격 시기도 아프칸 전쟁이 막 끝난 시점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더 늦으면, 자신들을 들추어내는 도덕적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반드시 ‘인종 차별의 피해 민족’으로서 자신들을 부각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를 보건 데, 그들은 이런 경우의 연막 전술에는 언제나 그것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휘둘러 왔던 이들이다.
그렇다면, 그 가장 강력한 비판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은 어느 집단일까? 그것은 바로 보수주의적 기독교이다. 왜냐? 그 집단은 미국을 목숨을 걸고 사랑하며, 도덕적 보수주의를 천명(天命)으로 알고 지킴으로써 미국 양심의 심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태 재벌들은 미국 약화(弱化)를 은밀히 추진하는 데 비해, 보수적인 기독교는 공개적으로 미국 강화(强化)를 부르짖으며, 이들의 죄악을 고발하게 되어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다. 보수적인 기독교가 이 유태계의 적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이유가 있다. 성경의 종말론은 명백히 오늘의 유태계 프리메이슨 지하활동을 ‘마지막 적(敵) 그리스도’라고 못박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크리스챤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친밀감을 갖게 되어있지만, 프리메이슨 만큼은 천적(天敵)으로 대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그 충돌과 그로 인한 프리메이슨의 파멸은 불가피한 것으로 기독교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이 유태계 프리메이슨은 보수적인 기독교를 공격하게 되어있다.
그들 범죄를 법적으로 다스려야 할 기관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백악관(白堊館)이다. 거기에 이의(異議)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백악관이 클린턴 행정부처럼 키신저의 수렴청정 밑에 있다면 그런 염려는 않아도 되겠지만, 오늘의 부시 행정부는 이미 말한 바대로 기독교를 포함하는 미국 보수주의와 한 팀이 되어 유태계 프리메이슨을 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키신저 그룹은 부시 정권을 공격 대상으로 안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이 만일 정말 9.11 테러와 관련된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기독교 보수주의와 백악관을 건드리는 짓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그것도 케케묵은 유태 홀로코스트(Holocaust;人種抹殺)를 상기시키는 짓을 하며, 유태계에 대한 공정한 비판이나 법적인 제재를 훼방하는 행태를 벌리게 되어 있다. 만일 그런 짓을 그들이 저지른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그런 무서운 범죄와 관련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정황 증거를 제공하는 우행(愚行)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그런 짓을 저질렀나, 저지르지 않았나?
놀랍게도 이런 조건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그들은 지금껏 계속 범하고 있다.
이 집단이 자신들의 언론 기관을 통해 닉슨과 빌리 그래함 사이의 해 묵은 대담을 끄집어 내 문제 삼는 행동을 잘 관찰해 보라. 만일 기독교 보수주의 집단과 백악관 측이 유태인에게 불이익을 끼치는 언동이나 정책을 쓰면, 그 옛날의 닉슨이나 오늘의 빌리 그래함 같은 수치를 면치 못하리라는 협박을 하는 행태가 아니라고 어떻게 안 볼 수 있을까? 그럼으로써, 유태계 중 일부가 범한 악랄한 범죄가 있다 해도, 절대로 건드릴 수 없도록 하는 전술적 협박 행위라고 안 할 수 없는 행태이다. 이것을 잘못 다루면, 30년 전의 워터게이트 추문보다 더 심각한 ‘아메리카 혐오증세’가 미국 내부에서 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유태계 프리메이슨과 대치(對峙) 상황
닉슨은 원래 그 자신이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다. 또한 그랬기에 기독교의 도덕적 보수성을 정치력(政治力)으로 끌어 올려 미국 정계(政界)의 정화(淨化)를 진지하게 시도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 정가(政街)에는 ‘침묵하는 도덕적 다수 세력(The Silent Moral Majority)'이라고 자칭(自稱)하는 무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엄청난 숫자로 생겨났다.
물론 닉슨은 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자신의 정치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그래서 유태계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행보를 옮긴 것은 어떤 면에선 오히려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외로운 역정(歷程)이 색깔이 전혀 다른 적대 세력 사이를 오가는 행보였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큰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를 늘 남겨 놓고 있었다. 결국 정치인으로서의 닉슨은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태계 정치 재벌들의 미움을 사 워터게이트의 홍수에 밀려 중도하차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기독교의 도덕적 보수주의를 강력한 정치적인 압력 단체로 밀어 올린 공로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 영향력은 당장 록펠러의 백악관 진출 야망까지 눌러버릴 만큼 강력했다. 그래서 록펠러를 비롯한 유태계 정치 재벌들은 그 당시 결코 닉슨만을 목표 삼아 워터게이트 사건을 벌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보다 더 큰 타켓은 보수적인 기독교 정치 세력이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부터 그들은 미국과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미국과 유럽 내부에서의 적은 일차적으로 기독교(개신교) 보수주의라고 본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런 이들 앞에 기독교 보수주의 대표라 할만한 빌리 그래함 목사가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이 전달되었을 때, 아마 그들은 소름이 끼칠 만큼 당황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원래 이 크리스챤 정치 세력이 커 나가는 것은 미국의 기존(旣存) 정계의 모든 파벌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중에도 특히 유태계 정치 재벌들 입장에선 무서운 견제 세력을 만난 셈이 되었다. 크리스챤의 도덕적인 목소리가 권력악(權力惡)을 향하여 소년 다윗의 물맷돌처럼 날아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 같은 입장에 있는 그들로서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크리스챤들의 이런 도덕적인 발언은 유태계 뿐만 아니고, 백인 우월주의의 특수 재벌들에게도 불편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하지만 그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노골적으로 적 그리스도적인 그들 속성을 나타내지 않고, 언제나 종교적으로는 중립적 색깔을 유지시켜 왔다. 이로 인해 그들은 크리스챤들에게 경계의 대상은 될지언정, 일차적인 투쟁의 대상에서는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태계는 지난 70년대 중반 무렵부터 뉴 에이져(New Ager ; 뉴에이지 운동을 신흥종교처럼 신봉하며 펼치는 사람들) 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종교 혼합주의(宗敎混合主義) 운동을 벌리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보수적인 기독교를 ‘인류 양심의 적(敵)’으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성경 용어대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자신을 ‘적 그리스도’로 선언을 해 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유태계의 정치 재벌들에 대한 보수적인 기독교의 반응은 날카로워 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의 1972년이라면, 바로 이러한 영적인 긴장이 팽팽하게 부풀고 있던 때였다. 그러다가 닉슨의 정치 진영 내부 반란 형태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건은 미국의 양심이 가증한 위선에 의해 큰 상처를 받은 해였다고 보아야 정확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그 상처받은 미국의 양심은 바로 기독교 보수주의의 도덕적 권위였고, 이에 위해(危害)를 가한 위선자들은 바로 닉슨을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정치적으로 처형한 자들이다. 그 당시 닉슨의 잘못이 있다면, 이들이 놓은 지뢰를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밟은 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위선자들이 오늘 다시 기독교 보수주의를 타켓으로 삼고, 공격을 시작했다.
미국은 30년 전, 바로 그런 엄청난 범죄적 상황에서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라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테러에 대해 교회와 미국 국민이 잘못 대응을 한다면, 베트남 패배와는 비교도 안될 재앙을 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 대응을 한다면, 이제까지의 수치와 재난을 모두 만회하고도 남는 은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빌리 그래함 목사가 저들의 비난을 두려워 하여 그 옛날 토로했던 확신의 소리를 비굴하게 철회하는 행동을 보인 것은 문제가 된다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의 양심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유태계의 잘못이든,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잘못이든, 정직하고도 용기 있게 ‘우정 어린 충고’를 서슴없이 해 주어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태계 언론 폭력,
지금도 미국 국민과 인류를 향해!
그런데 이런 역사를 가진 언론사들이 30년 전에는 철저히 감추었던 이 테이프 내용을 새삼 30년이 지난 2002년에 와선 일제히 폭로 형태를 빌어 공개했다. 왜 30년 전엔 감추어야 했을까? 그리고 30년 후인 오늘에 와선 왜 하필 ‘폭로 형태를 빌어’ 공개를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까닭은 오늘의 테러 난국(亂局)의 문제 핵심을 밝히는 데에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30 년 전의 언론사들은 워테게이트 사건을 이용하여 닉슨의 ‘음모 정치’를 탄핵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만일 이 테이프가 공개된다면, 유태계 언론의 닉슨 탄핵 행위가 정의로운 행위이기는커녕 오히려 닉슨보다 한층 더 높은 단계의 정치적 음모라는 것이 드러날 판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때는 이 테이프의 존재는 감춰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30년 후인 오늘에 와선 그들 입장이 변했다. 부시 정권은 클린턴 행정부의 이적(利敵)행위와 9-11 테러 진범 체포에 대해 피할 수 없이 정면 돌파를 해야할 상황이 박두한 것이다. 말하자면, 유태계에 대한 사정(司正)활동을 폄으로써, 정치적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할 순간이 박두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아무리 ‘테러와의 전쟁’으로 질질 끌고 가 보았자,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다른 돌파구가 마련되기까지라도 이 테러 진범 체포의 여론이 들끓어 오르는 일만은 막을 수 있어야 했다. 더구나 2002년 초는 마침 테러범 체포엔 별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아프칸 전쟁을 막 끝마친 무렵이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싫든 좋든 테러범 사정처리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다. 더구나 보수적인 기독교가 유가족들의 눈물과 하소연을 받아 정부에게 그것을 금방이라도 요구할 태세로 돌변할 수 있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우선 다급하게 택한 방법이 보수적인 기독교의 입을 틀어막는 한편, 백악관의 테러범 체포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게 할만한 심리적 협박이었다.
바로 이 협박의 효과적인 수단이 30년 전의 그 녹음 테이프 공개였던 것이다. 물론 공개로만 끝나서는 무의미하다. 반드시 거기에 ‘인종 차별적 발언’이라는 선고를 붙여, 살아 남은 빌리 그래함에겐 처절한 수치를 안겨주며 그 사과를 받아내게 하고, 무덤 속의 닉슨은 그 관이라도 꺼내 또 한번 재판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든지 테러범을 문제 삼아 우리를 건드리면, 빌리 그래함 같이 당한다!”
“만일 부시 정권이 클린턴 행정부의 이적행위와 테러범에 대한 사정처리에 들어간다 면, 반드시 닉슨처럼 정치 파문(破門)을 당한다!”
라 고 하는 메시지를 보수적인 기독교계와 부시 정부에게 은연중에 던지는 행동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협박이 어찌 빌리 그래함이나 닉슨처럼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재앙만을 의미하겠는가? 이것은 미국 전체에 대한 폭력 행사를 의미한다.
이것은 명백히 언론을 통한 심리적 폭력 행사였다. 그 폭력에 해를 입은 것은 단순히 직접 피해 당사자인 기독교나 부시 정부만이 아니고, 9-11 테러에 희생당한 유가족과 미국 국민과 전 인류가 함께 당한 폭력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분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 언론사들의 9-11 테러에 대한 선택적인 침묵과 사실 은폐와 왜곡 보도, 그리고 객관성을 결여한 편파적인 해석은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고의적으로 자행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9-11 테러의 원초적 동기,
세계지배 대권(大權) 쟁탈전.
그런데 미국 지배권 쟁탈을 위한 이 양대 세력의 각축전을 위에서 말한 유태계 언론 폭력과 관련지어 살펴보면, 이것이 단순한 미국 지배권 쟁탈전이 아니고, 실은 세계지배 대권 쟁탈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들은 미국 지배와 동아시아 지배와 중동 지배는 필수적인 관문(關門)으로 여겨야 한다. 그로 인해 지금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유태계 세계지배주의자들의 각축전(角逐戰)도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9-11 테러와 그에 따른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과 중동과 한반도 지배를 판가름하기 위한 전쟁의 시작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중에도 9-11 테러는 특히 양대 세력 사이에 미국 지배권을 놓고 생명을 내건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90년대에 전(前) 부시 정권은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정의의 심판이라는 구실하에 이라크에 대해 걸프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다음의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키신저 그룹이 ‘북미 핵회담’을 통해 북한을 전쟁판으로 끌어내려 했었다. 그때는 아직 9-11 테러가 터지기 전이었음에도 이 양대 세력은 이처럼 중동과 한반도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이것은 그들 간에 이미 세계제패를 위한 쟁탈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음을 나타내기도 한 셈이지만, 동시에 이 패권 투쟁에서 중동과 한반도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는지 드러낸 셈이다.
이 양대 세력은 지금 21세기로 들어서면서 그 투쟁이 야만스런 테러의 양상이 될 만큼 더욱 격렬해지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이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선 실은 공통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중동과 동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한 구조조정(構造調整) 작업이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그들 자신끼리의 패권구도(覇權構圖)를 확정해야 하고, 그 지역 주민들과 여타 지역 인류의 심리와 삶의 틀을 그들 지배체제에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경비를 덜 들여서 해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아니면 이제까지의 공든 탑이 모두 무너질 급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택하게 된 수단, 그것이 바로 이 ‘테러와의 전쟁’이다. 별 설득력도 없는 구실을 내세워 다급히 이 전쟁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는, 협박자의 위치에 있는 키신저 그룹은 말할 필요도 없고, 협박을 당하는 부시 정권마저 진지한 열정을 갖고 이 전쟁에 임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이 이유에서이다.
속죄양 한반도 백성,
유태 재벌들 위한 하수구 역할 강요당함.
- 테러와의 전쟁, 그 진정한 이유 -
그러나 그들에겐 이 전쟁에 대해 위에서 말한 이유보다 훨씬 더 절실한 목적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본토에서 그들끼리 치를 더러운 싸움은 그들 자신의 직접적인 파멸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께임의 링을 가능한 한 자신들의 영토 바깥에 마련해 치르고 싶어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깥 하수구(下水溝) 같은 곳에서 잘못된 그들 간의 관계에서 생긴 온갖 오물(汚物) 따위를 대리전(代理戰) 형태로 배출(排出)시키자는 것, 이것이 실은 더 큰 목적이라 해야 올바른 진단이다. 지금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본격화 한 양대 세력의 생존을 건 대결도, 그러므로, 당연히 바깥으로 끌어내 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특히 유의해서 살필 점이 있다. 만일 이들의 이 추한 대결 상황을 미국 국민들이 소상하게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미국 군인들이 이 상황을 완전히 눈치를 채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 보는가?
클린턴 행정부 당시 다국적군으로 참여한 미군들의 군복에서 미국 표지를 떼어내고 유엔 표지를 넣도록 하는 명령이 하달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이에 항명하는 사태가 벌어지어 이를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이미 오늘의 상황을 눈치 채기 시작한 교회는 미국 보호를 위한 보수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클린턴 행정부의 이적행위에 대한 교회의 비판은 단연코 유태계 정치 세력 전반에 대한 거부적인 분위기로 상승작용을 하여, 2002년의 중간 선거에서 부시의 공화당 보수파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교회 지도층은 전쟁 확대 자체에 대해선 의견이 통합되어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보호와 강화에 대해선 이처럼 이견(異見)이 없다. 사실 DHS의 등장은 여러 면에서 미국 국민들에게 큰 짐이 되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미국 보호와 강화를 염원하는 국민적 지지가 밑받침되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따라서 이 양대 세력의 미국 패권에 대한 추한 대결을 미국 국민들이 알았을 때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어느 세력이 되었든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집단은 사정없이 버릴 것이 틀림없다. 또 미국 국익을 지키려 한 집단이라 해도, 집단 이기적인 세력 강화를 위한 더러운 싸움에 미국을 이용하려 한 범죄 행위에 대해선 반드시 심판하고자 할 것이다. 하물며, 그 버림 받아야할 집단이 9-11 테러를 사주(使嗾)한 집단이요, 그를 통해 5960억 달러의 미국 돈을 금융 기법으로 강탈하다시피 훔쳐 간 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 미국 국민들이 무엇을 택할지를 묻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이런 짓을 획책하는 자들은 처음부터 이런 국민들을 ‘잠정적인 적’으로 돌려놓고, 그들의 작전을 짰다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
자, 그렇다면 그것을 어디로 끌고 나오려 하겠는가?
미국 이외의 지역 중에 그들이 세계 지배를 위해 언젠가 반드시 한번은 싸워야 할 곳, 그러면서도 그들의 생존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을 만한 곳, 동시에 그들을 위해 그 하수구 같은 역할을 할만한 곳, 그런 곳이 있다면 당연히 그곳을 대리 전쟁터로 삼아 그곳으로 가려할 것이다. 그럴만한 곳이 지금은 바로 중동과 한반도이다. 오늘날 ‘악의 축’으로 지명된 국가들이 바로 이 지역 국가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이 국가들을 UN 안보이사회의 결의도 무시하면서까지 전쟁 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상은 그들 간의 대결이 얼마나 처절하고 급박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들이 9-11 테러 이후 미국 안에서의 생존 위기를 모면할 대책으로 ‘테러 난국(亂局)’을 ‘테러와의 전쟁 상황’으로 전환시켜 미국 바깥으로 그 대결 무대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키신저가 한반도에서 북핵 문제를 일으킨다든가, 또는 IMF 경제폭력을 동원하여 말썽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행태는 모두 이런 관점에서 다시 주목하여 보아야할 사안이라 해야 옳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반도 위기는 단순히 온 세계의 혐오감을 사는 예측 불허의 인물 김정일(金正日) 때문만은 아니다. 이 두 세력의 이해(利害) 관계가 얽히고 ㅤㅅㅓㄺ혀 고의적으로 부리는 그들의 책략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이라면, 바로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을 인해 덤으로 국가 경제와 안보가 송두리째 위험해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그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세계지배를 지향하는 국제 세력들의 음모성 짙은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에 대해 2003년 3월 현재 이 양대 세력이 벌리고 있는 행동을 보면, 한반도 주민쯤 얼마든지 희생시켜서라도 그들 목표를 달성하려는 이들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유태계 프리메이슨 세력은 아주 사악하기 짝이 없는 책략을 더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백인들 내부와 유태계 내부에 엄청난 변화가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양측의 변화는 백인계에겐 플러스 효과를, 유태계 재벌들에겐 치명적인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변화는 백인들로 하여금 남한의 생존권을 보다 여유 있게 고려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하게 했다.
그러나 유태계에겐 위기의식을 갖고 긴박한 벼랑 끝 작전을 택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미국 내부에서의 세력 유지 자체가 어려운 처지이다. 아니, 세력 유지 정도가 아니고, 유태 재벌들 생존 자체가 무서운 시험대 위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잔인한 수법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이다. 9-11 테러가 왜 일어나야 했는지는 이러한 긴박한 그들 처지를 고려해 볼 때에야 이해가 가는 상황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한반도 정책은 당연히 그들의 생존을 위해 긴박한 벼랑 끝 작전의 한 부분으로 수행(遂行)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제껏 한국에서는 9-11 테러가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차원에서 정책적 고려를 하는 것을 볼 수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런 어리석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또 이제껏 여야를 막론하고 9-11 테러에 관한 정보나 해석은 거의 모두 미국의 유태계 언론이 내놓는 것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런 한심한 작태도 끝내야 한다. 그것은 키신저 무리의 벌린 입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제의 DJ정권 담당자들과 오늘의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이 이제껏 얼마나 무시무시한 범죄를 민족과 국가에게 범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아직 늦지 않은 동안 그 과오를 인정하고 ‘키신저의 충견(忠犬)’ 노릇을 하는 데에서 벗어나야 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미국 강화 정책
- 유태 측 미국 약화정책과의 차별화로 미국 지배권 탈환 -
그런데 위에서 말한 백인계 내부의 변화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들의 살길을 제대로 잡아나가기 위해서도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 나가야 한다.
백인들은 미국 강화 정책을 선택했다. 원래 그들은 유태계 재벌들과 함께 세계지배 대권(大權)을 장악하게 되는 줄 알고, 유태계와 더불어 ‘미국 약화(弱化)를 통한 미국 지배’의 음모에 가담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에 대한 그 배신적인 노선을 버렸다. 동시에 그들은 보수적인 기독교와의 화해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도덕적인 보수주의 쪽으로 회귀(回歸)하였다.
본래 그들이 유태계와 더불어 기독교와 도덕적 보수주의에 대한 비웃음과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그 세계지배 대권에 대한 야망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이젠 이처럼 유태계와 정반대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자리에 돌아오게 된 것일까?
그들은 이미 워터게이트의 수치와 모욕적인 베트남전 패배를 겪을 때부터 기독교를 이용하는 자세에서나마 ‘제한된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그들 내부에선 기독교를 다만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이용하려는 자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99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어를 낙선시키는 기독교의 확고한 의도와 저력을 경험하자, 그런 경향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향해 진지하게 기울어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 그 결과로 이들은 기독교도들 및 그들과 도덕적인 공감대를 지닌 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 세력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부수적 효과로 백인들 자신끼리는 있었던 분열도 지양(止揚)하고, 오히려 똘똘 뭉치게 되었다. 그것은 대단한 정치적 플러스 효과였다.
그래서 백인계는 전략적 차원에서 미국의 강화(强化)를 ‘선택적으로 고려(考慮)하는’ 수준을 벗어나, 아주 진지한 자세로 미국을 사랑하면서 미국의 강화를 전폭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서민층 지지율이 대폭 높아져, 유태계에게 거의 빼앗길 뻔했던 미국 지배권을 다시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태계 내부에서는 그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우선 유태 재벌들이 거느리는 유태계의 엘리트층과 일반 서민층이 심각하게 분열했다. 유태계 서민층이 배신감에 떨며 소련 붕괴 이후의 그들 엘리트층 행위를 강렬하게 비판하기 시작한데서 발단된 것이다. 재벌과 엘리트층이 자신들의 권력 강화를 위해 디아스폴라 서민들과 이스라엘 국민(서민층)을 다만 이용만 해 왔을 뿐, 이제 중동을 평정하고 소련이 무너지자 자신들을 버리고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서민층의 이 불만은 중동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안전보다 재벌들의 세계지배 야욕을 중시하는 데에서 터진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 공화국은 그 국가의 안전 보장 조건이 재벌들 이익 보장 조건과 결정적으로 상충(相衝)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재벌들의 의도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네이탄 야후는 미국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세계 각처의 디아스폴라들 사회에 거대한 파문이 일게 되었다. 인류에 대한 재벌들의 세계지배주의와 서민층의 평화 공존주의 사이에 분열이 일게 된 것, 바로 그것이 이 파문의 핵심적인 원인이다. 또 중동에선 그 재벌들의 세계지배주의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 사이에 처절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났다. 심지어 그들 재벌들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음모되고 자행되던 당시의 대응 행위에 대해서조차 무서운 비판이 나타날 정도였다.
원래 서민층 이스라엘인들은 지난 날 유태 재벌들의 나치 대응책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고 있기는 했다. 왜냐하면 나치에게 무장을 시킨 자본은 다름 아닌 유태계 미국 자본이었고, 히틀러의 유태 학살 책략도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의문까지 겹쳐 이번 기회에 큰 갈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라빈 수상의 암살은 이 갈등의 심각성을 들어낸 사건이다. 이로 인해 유태계 재벌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동과 유럽의 유태 민족 내부에서조차 경계와 배척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 배척의 수위는 자못 심각하여, 언제 갈라서게 될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유태계 재벌들은 이 갑작스런 손실과 저항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동아시아에서의 기득권(旣得權) 보호가 그들의 최후 보루 기지로 화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한반도(동아시아)에서의 그들 전략은 벼랑 끝에서의 배수진 전략으로 화해 갈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미국 정치의
캐스팅 보드, 기독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태계 세력은 기독교와 백인계의 정치적 연합 전선을 비웃었다. 그리고는 오만한 자세로 ‘반(反) 기독교적’ 자세와 음모성 책략을 벌려 나갔다. 이런 행위가 미국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미 말한 바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강한 반발을 하고 일어섰다. 록펠러의 백악관 입성 실패와 카터의 등장, 레이건과 부시 부자(父子)의 등장은 바로 이 기독교의 ‘대(對) 유태 재벌 저항의지’를 보여준 현상들이다. 물론 이것은 유태 민족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거부(拒否)가 아니고, 미국에 대한 은밀한 배신 행위에 대한 저항이었다. 기독교의 이 행동 노선은 놀라운 결과를 초래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백인계 보수주의 세력이 기독교 편으로 깊숙히 기울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 보수주의 정치세력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치적 고지를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얻게 되었다. 이 즈음부터 바로 이 변화의 물결을 인해 미국의 표밭 성향이 보수주의 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백인 보수주의의 기독교 편향 움직임은 그 동안 시련을 안 겪은 것은 아니다.
원래 이들은 기독교에 대해 실은 냉소적인 자세였다. 그래서 그들의 기독교 편향(偏向)은 어디까지나 전략적 차원에서 취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래서 한 때 전(前)대통령 부시는 그 본색을 다시 드러내 기독교를 버렸다. 그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반(反) 기독교적 백인 우월주의’로 들어섰다. 그리고 보수주의의 미국 강화정책 역시 슬그머니 ‘백인에 의한 세계 통치’라는 무지개 빛 안개 속으로 밀어 넣어 사라지게 했다. 그 백인 세계지배주의는 ‘신(新) 나치주의’의 등장을 떠올리게 한다. 부시의 이런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그의 ‘신세계 질서( New World Order)’ 선언이었다.
그는 유태계도 자신의 발 밑에 엎드리게 할 세계지배 구도를 형성하는 차원에서 그의 재선(再選)운동을 펼쳤다. 그는 민주당의 흠이 많고 젊은 미숙아(未熟兒)처럼 보이는 후보 클린턴을 처음부터 무시했다.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선거 중반전부터 주춤거리더니, 후반전에선 아예 선거운동을 포기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전혀 그답지 않은 행태였다.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다. 배신감에 차 있던 기독교 측에서 록펠러나 다름없이 흠이 많은 그에게 재선을 포기하도록 종용(慫慂)했던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왜 그렇게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미국 내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특이한 정치 역학적 위치 때문이다.
지금은 9-11 테러를 인해 미국 내에 미국 지배권과 세계지배 대권(大權)을 놓고 다투는 패권(覇權)집단 둘이 있다는 것을 웬만한 식자(識者)라면 모두 아는 형편이 되었지만, 원래 이들의 본격적인 싸움은 한 세대 전인 워터게이트 사건 때부터임은 이미 말해온 바이다. 그런데 이 두 세력의 틈바귀에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국민의 표심(票心)을 좌우하는 기독교였다. 이러한 영향력 행사의 요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 아주 특이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유태계이든 백인계이든 불리할 경우에 상대 세력의 치명적인 흠이 기록된 비밀 파일을 들고 오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엔 기독교는 거의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정국(政局)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90년대 초의 부시 재선운동 당시 기독교가 들고 있던 부시 파일은 보나 안 보나 유태계로부터 넘겨 받았을 것이다. ’70년대 중반 무렵 록페러 파일을 백인계로부터 받았듯이 말이다. 이런 파일은 넘겨준 자들 자신이 사용하려 했다면,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들 상대 세력이나 다름없이 사악하기 짝이 없는 비밀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파일이 스스로 강력한 표밭을 지녔으면서도 다른 표밭의 심리까지 크게 좌우할 수 있는 기독교에게 넘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그것은 완전히 살생부(殺生簿)로 둔갑하게 된다. 그 당시 부시 역시 록펠러처럼 기독교에게 당했던 것이다. 기독교가 평상시에 이들에게 비록 무시를 당하고 있긴 하지만, 일단 고개를 들고 일어나면, 미국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위력을 아직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경험이 약이 되어, 백인계는 다시 기독교와 미국 강화정책을 택하게 되었다. 때 마침 클린턴이 키신저의 수렴청정 하에서 다시 그 몰염치할 만큼의 부도덕성과 기만적인 대(對) 기독교 정책을 편 것은 백인들에게 기독교와의 결합을 급템포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준 요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고어를 낙선시키기에 이른 백인계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精髓)를 향해 진지하게 파고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젠 깊은 신앙을 지닌 지도층들도 늘어났고, 전반적으로 기독교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이지만,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기독교와의 유대를 강화시켜 그것을 대(對) 유태 재벌 무기로 활용하는 분위기는 더 무르익을 수밖에 없다. 신(新) 보수주의로 불리는 이들은 철저히 ‘미국에 의한 세계지배’를 추구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지만, 기독교와의 전략적 제휴에 관한 한, 그들조차 적극적이다. 그것이 오늘의 부시 정권 내부 분위기라 할 수 있다.
키신저의 미국 약화정책,
부시의 강화정책과 차별화 되어 드러남.
이것은 유태계의 미국 지배력이 갑자기 지진을 만난 것과 같은 역사였다. 특히 백인계 보수주의의 지도력을 상징하는 부시 정권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결정적인 전략을 내놓았는데, 바로 그것이 유태계 재벌들의 정치 세력에 상처를 입히는 결정타가 되었다.
부시 정부가 내놓은 그 전략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들의 미국 강화정책을 유태 재벌들의 미국 약화 정책과 대비(對比)시켜 미국 국민들에게 확연히 드러나도록 차별화 시키려 했다.
둘째, 그 미국 약화정책이 유태 재벌 세력 측의 미국 지배력 독점 전략이라는 사실 을 공개하고자 했다.
셋째, 그런 행위가 미국 국민의 위대한 자유를 박탈하는 범죄 행위임을 밝히고, 그에 대한 사정(司正)처리의 의지를 명백히 하였다.
그렇다면, 그런 목표를 한꺼번에 달성하게 한 부시 정부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부시는 취임하자마자, 클린턴 행정부의 이적(利敵) 행위를 문제 삼고, 그것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미 국방부 정책 고문인 키신저의 지휘하에 미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최첨단 비밀 군사기술을 포함하여 많은 첨단 기술 정보와 장치와 인력(人力)을 해외로 빼돌린 사실을 부시는 공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분의 사정처리 의지도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리고는 그 사정활동의 첫 단계로 유태계 무기회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그 회사들에게 수주(受注)되어 있던 무기 생산이 백인계의 타회사로 이양(移讓)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실 미국의 모든 국민들은 너무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라하다가, 분노와 함께 부시의 사정처리 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부시 정부의 전략이었다.
원래 이 두 세력 사이에 쟁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백인계 엘리트층 역시 유태계 엘리트층과 다름없이 미국 약화정책을 거들었었다. 그들에게도 일차적 관심은 세계 지배력 확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서도 배신적인 자세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전세계를 지배하는 입장에서는 국가 레벨에서의 초강국(超强國)이란 존재는 장애물에 불과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의 퇴임 인사를 통해
“ 만일 미국이 다국적 군산복합 기업 카르텔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다스리지 못한 다면, 미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의 위협이 될 것이다.”
하 고 경고를 하였었다. 그 당시 거대한 공룡같이 커진 다국적 군산복합 기업들은 그 기업체질 자체가 악어나 공룡처럼 끊임없이 남의 피와 살을 잡아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괴물(Beast)로 화해 있음을 아이젠하워는 전쟁 운영 과정을 통해 익히 보아온 바였다. 이런 기업체 하나가 쓰는 예산이 약소 국가는 비교도 되지 않고, 중진국(中進國) 예산을 능가하는 경우도 예사로웠다. 그런 회사들이 미국의 정치를 좌우하며,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의 전쟁과 내란과 혁명이나 금융(무역) 대란을 모의(謀議)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이젠하워가 얼마나 의분에 떨었을지, 안 보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이런 경고는 그냥 이런 수준의 일과성(一過性) 범죄 행위를 보고 나온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반드시 일전(一戰)을 불사하고라도, 이들을 사정처리하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워 엘리트의 역사와 전세계에 걸친 조직과 영향력을 검토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이 사태는 자기 당대의 사정처리 수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도 알게되었다. 그래서 후대의 역사에 호소하는 경고 정도로 자신의 행동을 제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알아낸 놀라운 사실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다. 전세계에 걸쳐 지하에 조직되어 있는 파워 엘리트 그룹인 ‘프리메이슨(Free Mason)'은 바로 그 정상(頂上)에 이 다국적 군산복합 기업((多國籍軍産複合企業) 카르텔을 두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 집단은 크게 보아 양대 산맥과도 같은 분파로 구성되어 있다. 그 양대 조직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첨예(尖銳)하게 드러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백인계와 유태계 그룹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한 세기 전에 이 양대 세력의 선대(先代)들은 함께 오늘의 미국과 같은 초강국을 없애기로 합의한 바 있었다. 그리고 고등종교 중에서 그들의 천적(天敵)이라 할 기독교 보수주의를 박멸하기로 역시 합의하였다. 그 사실은 소위 ‘시온 의정서’(Sion Protocol)라는 문서로 폭로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의정서(議定書)의 전략대로 그들은 세계 정치를 요리하느라고 양차 대전과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범하기도 했고, 대전(大戰) 이후엔 미소(美蘇)) 냉전체제를 만들어 이 목표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내기도 했다. 또 한국전과 수 차례에 걸친 중동전을 옳지 않은 방향으로 처리하면서, 오늘의 세대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아이젠하워의 기독교 양심은 권좌를 떠나면서 그들 음모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경고 따위는 비웃으며 무시한 세계지배주의자들은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에 이르자, 마지막으로 남은 초강국 미국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함께 추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백인계 보수주의는 유태 세력에 의해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 패배의 모욕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지배 대권으로부터 유태계의 모략과 음모에 의해 배제(排除)당하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되자, 백인계로서는 유태계에 대한 저항 의지가 터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내부에서 자기 반성의 소리가 힘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보수적인 기독교의 도덕적 열정과 표심(票心)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부시 전(前)대통령의 잘못된 야망 때문에 한 때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경험이 약이 되어 클린턴의 부도덕성과 키신저의 미국 약화 행위를 겪은 후엔 ‘미국을 바르게 지키자’는 구호 아래 그 결합이 더욱 공고(鞏固)해졌다. 그러다 9-11 테러를 당한 오늘에 와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태 재벌들의 혐의가 드러나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니,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로 쏠릴 것은 뻔하지 않은가?
따라서 오늘의 부시 정권이 유태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미국 강화(强化)정책’은 단순히 유태계의 ‘미국 약화(弱化)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만 나온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그것은 미국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미국인들의 본능을 대리(代理)한 신념의 폭발이요, 비(非) 백인계 국민들 모두의 미국에 대한 애정을 대표한 것이라 해야 마땅하다.
유태계 세계지배주의자들의
2003년 대(對)북한 전략
9-11 테러와 관련된 키신저의 전략적 행위는 한반도 가운데에서도 북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음모를 자행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지 말고 주목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키신저의 한반도 전략의 핵심은 ‘전쟁을 통한 남북 분단지배’에 있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남북한 어느 곳이 되었든 말썽스런 전쟁꾼으로서의 조건을 보다 많이 갖춘 쪽을 완전히 장악하여 언제든지 전쟁의 뇌관으로 이용할수 있도록 하는 데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지금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유태계 세계지배주의자들의 각축전(角逐戰) 도 바로 옮겨져 와 키신저의 이 전략을 중심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9-11 테러와 그에 따른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과 중동과 한반도 지배를 판가름하기 위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 중에도 9-11 테러는 특히 양대 세력 사이에 미국 지배권을 놓고 생명을 내건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양대 세력은 지금 비록 다투고는 있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선 실은 공통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중동과 동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한 구조조정 작업이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그들 자신끼리의 패권 구도를 확정해야 하고, 그 지역 주민들과 여타 인류의 심리와 삶의 틀을 짧은 시간에 경비를 덜 들여 그들 지배체제에 순치(馴致;동물을 사람이 부리기 좋게 길들임.)시키기 위한 수단, 그것이 바로 이 ‘테러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이 있다. 그것은 미국이나 유럽 본토에서 그들끼리 치를 더러운 싸움을 바깥 하수구 같은 곳에서 대리전 형태로 배출(排出) 시키자는 것이 실은 더 큰 목적이라 해야 올바른 진단이다. 걸프 전쟁과 아프칸 전쟁은 이것을 극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또 오늘날 ‘악의 축’으로 지명된 국가들 역시 바로 이 지역 국가일 뿐 아니라, 이 국가들을 별 설득력 없는 이유를 들어 전쟁 쪽으로 양 세력이 함께 몰아가고 있는 현상 역시 이런 차원에서 볼 때에나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특히 오늘의 한반도 위기는 단순히 예측을 불허하는 김정일 때문만이 아니고, 이 두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ㅤㅅㅓㄺ혀 고의적으로 부리는 책략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을 인해 덤으로 국가 경제와 안보가 송두리째 위험해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그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세계지배를 지향하는 국제 세력들의 음모성 짙은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에 대해 2003년 3월 현재 이 양대 세력이 벌리고 있는 행동울 보면, 한반도 주민쯤 얼마든지 학살해서라도 그들 목표를 달성하려는 냉혈한들이다. 그 중에서도 유태계 프리메이슨 세력은 아주 사악하기 짝이 없는 책략을 백인들보다 한층 더 적극적으로 구사(驅使)하고 있다. 이제 여기에서 현재 진행중인 이들의 한반도 책략을 간결히 요약 서술해 보자.
키신저 그룹은 그 동안 북한 쪽으로 공을 들여 그 더러운 꼬리를 내밀어 놓고 있다.
2002년 3월 기독교와 백악관을 향해 앞서 말한 그 유태 측의 언론 협박과 더불어 북한을 이라크보다 더 위험한 전쟁 대상국으로 부각시켰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다급한 이유가 있었다. 북한 김정일은 자신을 토사구팽 시키려는 키신저의 작전을 그 얼마 전부터 간파하고, 미국과 일본에 대한 대화 정책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김정일이 더 이상 부시의 백악관과 키신저 그룹을 동일시하지 않고 차별화 하여 대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얼마나 다급하고 분했으면, 중국의 비위를 거스리면서까지 개성과 신의주에 특구를 설치하려 했겠는가?
키신저 그룹은 김정일의 이런 돌발적인 저항에 대해 단순한 놀라움 정도가 아니고 아마 두려움까지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은 키신저가 한반도에서 범한 이중 삼중의 국제적 사기(詐欺) 전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 안보를 위해 폭로 또는 거래의 형태로 이용하고자 하는 행위가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그래서 이를 봉쇄하고자 급히 김정일을 벼랑 끝으로 몰아야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김정일이 제네바 협정을 위반했다면서 격렬한 ‘대북(對北) 전쟁론’을 부르제진스키까지 동원하여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 행위도 실은 키신저가 그렇게 떠들 자격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북한이 최근 보유하게 된 클루즈 미사일 기술은 그의 영향하에 있던 클린턴 행정부의 고급 군사 기술 해외 확산 정책에 도움을 입은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록펠러 계열의 관여로 DJ 정권과 현대 그룹의 돈을 대주는가 하면, 중국과 중동으로부터 기름을 포함한 군용 에너지를 공급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쳐야한다고 소리를 친다. 이제껏 그는 북한 군부에 대해 이처럼 병 주고 약 주는 행동을 해 왔다.
부시 정권이 이에 순순히 응해, 대(對)북한 전쟁포고는 피하면서도 켈리 특사를 파견한 것은 나름대로 김정일 체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재빠른 기회 포착 동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생존 전략
이런 상황하에서 북한 군부가 오늘(2003년 3월) 현재 어떤 행동을 서두르고 있는지 요약해 보자.
우리는 미국에 대해 강력한 핵 공갈을 치는 북한의 무모한 듯한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 이미 북한 군부는 같은 미국인이라 해도 유태계와 백인계가 전혀 다른 적대 관계임을 알고 행동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김정일조차 한국의 통치권자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드디어 이 양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의 생존 전략으로 자신들이 내세울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를 일단 내밀어 놓고, 다음과 같은 효과를 노린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a. 부시 정부에게는 괌도와 한국 근해 항공모함의 핵이 이미 충분히 그들 사정권 안의 공격 대 상임을 각인시킴으로써 함부로 공격을 못하게 하는 한편, 키신저 그룹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자신들과 새로운 대화의 기회를 붙들고자 하고 있다.
b. 키신저 그룹에게는 그들이 제공한 크루즈 미사일 기술이 미국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셈 이라는 점이 그들에게 무서운 덫이 되고 있음을 각인시킴으로써, 북한 군부를 더 이상 음성 적 지배 대상으로 보지 않고,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도록 하고자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 노무현 정권에게는 이 핵 공갈이 남한 우익세력을 누르는 지렛대가 되게 하고, 남한의 좌익 세력이 민족주의와 영합하여, 북한 핵이 북한만의 무기가 아니고 민족의 무기인 듯이 인식시 키고 ‘외세를 배제한 남북 평화협상’이 가능할듯한 꿈을 갖게 할 계기가 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그들은 DJ 이래 유지되어 온 대남(對南) 물밑 대화 라인을 더욱 활성화시 키고 있다.
d. 이런 상황하에서 김정일이 북한 군부에 의한 삐에로 입장인지, 아니면 실세인지에 따라 남한 에 대한 북한 군부의 전략 목표가 크게 달라질 기대를 가져선 안 된다. 전자일 경우는 김정 일이 키신저와 대결하다 연금된 경우이고, 후자일 경우는 키신저와 타협했을 경우이다. 그 어 느 경우이든 북한 군부가 부시 정권에게 거칠게 행동하는 동안은 부시 정권(미국내 백인 우 월주의자들)을 부수는 것을 최대 현안으로 삼고 있는 키신저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e. 이런 상황하에서 북한은 궁극적으로 남한을 미국 공격에 대한 방패로 이용함과 동시에 고려 연방 정책 강요의 기회를 포착하고자, 땅굴과 해안을 통한 게릴라 침투 방법으로 남한에 내 전 상황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들은 이미 켈리의 방북 시기에 홍콩으로 부터 30만 내지 30만 장에 달하는 한국군 군복과 경찰복을 밀반입 해서 들여갔다고 한다.
f. 북한의 이 전략은 한국의 현정권에 의해 크게 도움을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냐 하면, 주한 미군은 이미 한국의 요구에 의해 휴전선에서 철수하였고, 6000명 이상의 미군이 이미 감축되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노무현 정권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조 차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북한 편향적이라고 보고 있어, 현재로서는 노무현 정권과 외교상의 의전적 대화 라인만을 가동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선 그들은 키신저에게 감사하고 있을 것이 다. 왜냐하면, 노무현 정권의 이런 행동은 전적으로 키신저 측의 정보와 해석과 보장에 힘입 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g. 이것은 주한 미군의 정치적 입장이 종래의 전쟁 억지력과 인계철선(自動介入) 역할에서 이미 훨씬 뒤로 물러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에 의해 게릴라 침투가 벌어질 때, 전 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고, 남한의 내전(內戰)으로 여기게 되어 주한 미군은 정치적 중립 입장에 서게 되거나, 일단 지상군 철수 후에 상황에 따라 남한 영토 외부에서 한국 보호 목 적이 아닌 미국 이익을 위해 직접적인 대(對)북한 선전포고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그 동안 이러한 상황 유도를 위해 수십 년간 애써 왔는데, 노무현씨 등장과 더불어 그것이 이루어졌다.
h. 지금 북한은 이런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시간에 쫓기고 있다. 우선 원자로 가동과 더불어 핵탄두 제작 기일을 6월 정도로 잡고 있는 미국 측의 전쟁 압박이 닥치고 있다. 노무현 정권 이 북한의 속임수 계략을 알아채고, 다시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회복될 시간이 박두해 있다. 그에 따라 주한 미군 역할이 전보다 더 한국 안보에 강하게 결속될 것은 명약관화 하다. 또 키신저 측의 미국내 입장 약화가 가속도적으로 심각해져, 상대적으로 그 유태계가 자신들 후 견 역할을 해 줄 수 없는 시각도 눈 앞에 닥쳤다는 것을 지금 인식해 가고 있다. 이 모든 것 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북한 군부를 시간에 쫓기게 하는 요인이 있다. 그것은 그들 내부에 반(反) 김정일 파와 친(親) 김정일 파 간의 갈등이 체제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의 한반도 전략
그런데 이런 행위는 키신저 측만이 벌린 것이 아니다. 실은 부시 측도 그 이상으로 떳떳하지 못한 전략으로 대응한 셈이었다. 키신저 그룹의 잘못된 행동을 통치권자(統治權者)로서의 당당한 사정처리와 정치적 해법(解法)을 내놓지 못하고, 역시 물밑에서의 음성적 전략에 의지해 상대 세력의 뒷통수나 치는 행동으로 대응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말한다. 이것은 명백히 부시 통치력의 한계를 만천하에 들어낸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만일 키신저가 그 조사위원회를 계속 장악한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었더라면, 지금 거대 권력조직으로 등장하고 있는 DHS(祖國安保部) 는 키신저를 위한 힘이 될지, 아니면 부시를 위한 힘이 될지, 그것도 알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 뻔했다. 부시가 키신저의 조사 대상이 되면, 그 즉시 여론은 ‘부시는 왜 테러 진범의 체포에 성의가 없을까?’ 라는 불만으로 상승 작용을 하게 된다. 그런 의심을 받는 부시의 명령에 순순히 응해 주기엔 DHS는 그 활동 영역이 너무 광대한 공룡(恐龍) 조직이다.
이 DHS는 타국인(他國人)들 뿐 아니라 미국 국민들까지 잠재적인 적(敵)으로 보고 사찰(査察) 대상으로 삼는 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부서이다. 그러므로 이 조직의 실체는 CIA 이상의 권력을 장악한 괴물로 보아야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런 조직은 일단 생겼다 하면, 조직 자체의 유지와 확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자연히 관료적인 집단 이기주의에 입각하여 그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CIA와 FBI가 그 전철을 밟아 왔다. DHS라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이 괴물은 지금 거대한 정치 대결의 산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소지가 많다.
DHS 같은 권력기관의 속성은 4년마다 한번씩 갈리거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에 구애받지 않는 힘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의 과제로 삼게 되어 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거의 표심(票心) 이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통치권 행사를 따르다 보면, DHS 본래의 기능을 다 할 수 없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정통성을 확보한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런 대응을 하게 되는데, 하물며 정통성이 없거나 취약점이 많은 통치권자에 대해서야 어떻겠는가?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키신저라는 커다란 짐을 짊어진 부시에게 DHS의 등장은 결코 부시의 통치력 강화(强化) 징조라는 쪽으로만 볼 수가 없다. 설령, DHS가 키신저나 그의 조직을 경계의 대상 또는 적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해도(현재의 상황으로는 그런 위험 비율이 아주 높음), 그것이 곧 바로 부시의 힘으로 실리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DHS는 그런 경우엔 취약한 부시의 캠프에 서기보다는 반드시 제3의 위치에 서서 영향력을 발휘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에 DHS가 키신저와 함께 부시에게 압박을 가하는 입장에 선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른지, 실로 상상하기조차 싫은 미국의 비극적인 모습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키신저가 DHS와 동반 등장을 한 상황 아래에선 DHS는 결코 부시의 힘으로 작용하기는 힘들게 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일단 키신저가 워싱턴에서 다시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 부시 정권은 9-11 테러와 관련하여 키신저 그룹에 대해 아무런 책임 추궁을 못하고 있다. 이런 관찰이 맞는다면, 지금 미국의 통치력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갈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해야할 것이다. 또는 이 통치력의 누수(漏水)와 분렬을 막는 데에 요행으로 성공하는 바람에 부시에게로 권력의 과다집중(過多集中)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가 되었든 미국에겐 재앙이요, 인류에겐 큰 근심꺼리가 될 공룡이 출현한 셈이 된다.
그런데 오늘의 미국 상황에서 정작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다. 제반 정치 세력간의 힘의 안배(按配)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이제 말하고자 하는 문제를 인해 발생하는 후속(後續)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그 핵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만한 실마리를 잡기만 하면, 키신저나 DHS의 등장을 인한 역기능(逆機能) 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있다 할 수 있다. 부시는 왜 9-11 테러와 관련된 업무에 키신저를 끌어 들여야만 했을까? 그것도 테러 예방을 못한 행정부 잘못을 조사하는 자리에 왜 하필 그를 앉혀야만 했는가? - 바로 이것이 그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과연 부시가 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속사정이라는 것이 이미 부시로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짐은 국민들의 어깨에 짊어지워진 셈이다. 특히 오늘 이 테러 난국의 희생자들 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이 나라의 교회 어깨 위에 그
짐이 짊어지워진 것이다. 키신저 그 사람과 그 배후의 유태계 재벌들까지 불쌍히 여기는 큰 심정으로 그 짐을 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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