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간

원자와 원자핵

아이유 IU 2009. 3. 14. 14:57

1808년 돌턴이 원자론을 제시할 때 돌턴은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알갱이라고 했다. 그러나 1896년 프랑스의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은 우라늄 원소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자에서 무엇이 나온다는 것은 원자가 더 작은 알갱이로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베크렐의 발견에 관심을 갖게 된 마리 퀴리(Marie Sklodowska Curie, 1867~1934)는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수 톤의 우라늄 원석인 역청을 정제하여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Po)과 라듐(Ra)을 발견했다.

 

 


원자가 내는 방사선을 조사한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방사선에는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알파선은 양전하를 띠고 있는 입자의 흐름이며, 베타선은 전자의 흐름이고 감마선은 파장이 짧아 큰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기파이다. 알파입자가 헬륨 원자핵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러더퍼드였다. 원자에서 이렇게 다양한 입자와 전자기파가 나온다는 것은 원자의 내부 구조가 복잡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원자가 더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원자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자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자 내부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원자 모형을 이용해야 한다.

 

 

원자의 내부구조를 설명하는 모형을 제시하여 측정된 원자의 성질을 설명하고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이 발견되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가장 작은 알갱이라는 돌턴의 주장도 하나의 원자 모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03년에 양전하를 띠고 있는 원자핵 주위를 전자들이 행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처럼 돌고 있는 원자모형을 제시한 사람은 일본의 나가오카 한타로(長岡 半太郞, 1865~1950)였다. 그러나 토성모형이라고 부르는 한타로의 원자모형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해에 전자를 발견한 영국의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이 플럼푸딩 모형이라고 부르는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이 원자모형에서는 전자들이 원자 안에 골고루 퍼져 있는 양성자들 사이에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톰슨의 원자모형은 원자에서 방사선이 나오는 것과 원자가 이온이 되는 것을 설명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톰슨의 원자모형은 그의 제자였던 러더퍼드에 의해 새로운 원자모형으로 대체되었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양전하를 띠고 있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전자들이 돌고 있는 원자모형이었다. 전체 원자에 비해 아주 작은 원자핵은 대부분의 원자 질량을 가지고 있고 전자는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는 원자 속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즉, 원자핵이 발견된 것이다. 그 후 원자모형은 보어의 원자모형을 거처 양자역학적 원자모형으로 발전해 갔다.

 

 

원자를 축구장이라고 한다면 원자핵은 축구장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작은 구슬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에 비해 원자핵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원자핵은 원자의 대략 1만분의 1크기이다. 그러나 이 작은 원자핵 속에는 원자의 질량이 대부분 들어 있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는 양성자와 중성자이다. 중성자는 1932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원자핵이 양성자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원자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원자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수이다.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원자는 수소이다. 산소 원자핵은 8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고 탄소 원자핵은 6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다. 양성자의 수를 원자번호라고 한다. 보통의 원자는 양성자와 같은 수의 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전하나 음전하를 띤 이온은 전자의 수가 양성자의 수보다 약간 많거나 적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적당한 비율로 들어 있는 원자핵은 안정해서 붕괴되지 않는다. 안정한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작은 원자의 경우에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같을 때 안정하고 큰 원자핵은 중성자의 수가 양성자의 수보다 많은 원자핵이 안정한 원자핵이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을 뿐이다. 불안정한 원자핵으로 스스로 붕괴하여 방사선을 내고 다른 원자핵으로 변환된다. 이런 원소를 천연 방사성 원소라고 한다. 자연에는 많은 종류의 방사성 원소들이 존재한다. 우라늄은 대표적인 천연 방사성 원소이다.

 

 

한 종류의 원자를 다른 종류의 원자로 바꾸는 것은 오랫동안 많은 과학자들의 꿈이었다. 특히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값 싼 금속을 금과 같이 비싼 금속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돌턴의 원자설이 등장한 후 그러한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도 않고 다른 원자로 변하지도 않는 알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원자의 종류는 원자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원자핵 속의 양성자의 수를 바꾸면 원자를 다른 원자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1919년에 러더퍼드는 질소 원자핵에 알파입자(헬륨 원자핵)를 충돌시켜 질소 원자를 산소 원자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한 종류의 원자를 다른 종류의 원자로 바꾸는 인공 핵변환에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연금술사들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이다.

 

1932년에는 러더퍼드의 학생이었던 채드윅(James Chadwick, 1891~1974)이 중성자를 발견하였다. 중성자는 질량은 양성자와 거의 같지만 전하를 띠고 있지 않은 입자이다. 중성자의 발견으로 원자핵의 구조가 완전히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인공 핵변환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양전하를 띠고 있는 원자핵과 알파입자를 충돌시키는 것은 전기적인 반발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전기를 띠고 있지 않은 중성자는 쉽게 원자핵과 충돌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인공 원자핵 변환을 훨씬 쉽게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인공적으로 한 원자핵을 다른 원자핵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영국의 러더퍼드, 프랑스의 이레느와 프레드릭 졸리오 퀴리, 독일의 마이트너와 한, 이탈리아의 페르미와 같은 사람들이 그 중심에서 새로운 원자핵을 만들어 내는 경쟁을 벌였다.

 

1933년에 마리 퀴리의 딸과 사위였던 이레느와 프레드릭 졸리오 퀴리는 알루미늄에 알파입자를 쏘아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마리와 피에르 퀴리는 1903년에 천연 방사성 원소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그들의 딸과 사위는 1935년에 인공적으로 방사성 원소를 만들어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같은 시기에 로마대학의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가 원자핵에 전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자로는 별다른 실험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양성자로 실험을 했다. 양성자는 원자핵의 양전하에 의해 반발되었기 때문에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중성자가 발견된 후 페르미는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아 넣기 시작했고 40개가 넘는 새로운 방사성 원자핵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큰 원자핵을 두 조각으로 깨트리는 원자핵 분열을 처음 성공시킨 사람은 독일의 한(Otto Hahn, 1879~1968)과 스트라스만(Fritz Strassmann, 1902~1980)이었다.

 


 1938년에 그들은 중성자를 우라늄 원자핵에 충돌시키면 우라늄 원자핵이 불안정해져 두 조각으로 깨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실험에 깊이 관계했던 리제 마이트너는 나치를 피해 노르웨이에 가 있었기 때문에 원자핵 분열의 공적을 나누어 가질 수 없었고,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지도 못했다. 원자핵 분열이 알려지자 과학자들 중에는 원자핵이 작은 원자핵으로 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원자핵 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아주 작아 이를 이용하려는 것은 달빛을 이용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원자핵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 10년도 안 되어 원자폭탄은 만들어졌고 그것은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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